[새아침에...] 김부자에 대한 구명약속..호영진 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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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대소국들이 온통 북한의 김일성부자를 놓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채 93년 한해를 다 보내고 있다. 마치 뜨거운 감자를 맨손바닥에
놓고 쩔쩔매는 모습이다. 미상불 뜨거운 감자야 먹을 욕심만 버리면
내던지면 그만이다.
그러나 북한이란 존재는 상대에 따라 가치를 달리한다. 동족인 우리들
한국인의 입장,근거리의 중국인이나 일본인,그리고 원거리에 있는 미국인과
그밖의 여러나라 사람들에게 새겨진 북한과 김부자에 대한 인식은 천차만별
일 것이다. 적어도 우리로선 북한을 내던질 수는 없다.
올1년중 제기된 북한문제의 핵심은 핵무기다. 서방의 위성사진에 잡힌
영변핵시설을 평양측은 평화목적의 연구시설이라고 우기고 있고,타국들은
그렇다면 국제기구의 사찰을 수용해 무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밝히라는
요구다.
북한이 짜장 핵무기를 가지고 있으면서 버티는지,아니면 허세로 외교상
양동작전을 쓰는지 조차 해석이 엇갈리는 판국이다. 그러나 이문제의
해법은 사실점검에서가 아니라 김부자의 심리를 분석하는데서 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믿는다.
김부자는 한마디로 벼랑으로 뒷걸음질을 치고 있는 상황에 빠져 있다.
그 두사람은 대문을 안으로만 빗장을 잠그고 있을뿐, 밖을 향한 오각은
보통사람 이상으로 작동하고 있다. 그래서 바깥 세계의 급변을 절대
모르지 않을뿐 아니라 누구보다 민감하다.
김부자가 자면서도 가위눌릴 만큼 몸서리치는 장면은 그리도 비슷하면서
사이좋던 루마니아의 독재자 차우셰스쿠가 최후를 맞는 TV사진임에
틀림없다.
김일성주석은 1차로 50년대후반 흐루시초프의 스탈린 격하에서 충격을
받았다. 그 대비책으로 나온것이 소위 주체사상 전략이었다. 그것은
자신의 신격화와 아울러 혈육으로의 후계체제 공고화로 이어진다. 정일이
어리던 70년대초까지는 아우 영주를 후계로 상정했다.
그러나 2촌간인 형제보다는 한마디 사이인 아들밖엔 믿을수 없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혔다. 신분타파를 한 핵심사상으로 하는 공산주의
신봉자가 절대로 범해서는 안될 혈연주의의 금기를 저지르고만 것이다.
그때 이미 운명의 화살은 시위를 빗나갔다.
(그 과정에서 정일자신의 능동적 역할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아버지와 계모 김성애 사이를 20년간이나 이간시키는 난사를 용케도
해냈다. 이복 아우 평일을 따돌리는 직방의 전략이다. 금실이 좋건
나쁘건 한방을 쓰면서 처의 베개송사를 외면할 남편이 있을수 없고,
제 소생을 두둔하며 전실 자식을 헐뜯지 않을 양처는 드문 법이다.
"기쁨조"라고 하는 미인계가 정일의 작품이라는 추론이 가능해진다) 요컨대
김부자는 되돌릴수 없는 자충수의 벼랑길을 지나쳐 올라갔다. 물론 그런
과정에서 남한이 망하리라는 요행을 갈망했다.
쿠데타요,데모요,부패요,지역갈등이요. 하는 남쪽의 간헐적 상황전개가
그런 요행심을 부추기기에 충분했었다.
그런데 용케도 남쪽은 정권을 교체해가며 면면히 지속될뿐 아니라 국력이
그들을 추월하고 남쪽 자본가들은 구소련 중국 동구에 까지 활개를 펴고
있다. (국민 총생산은 64년에,1인당 생산은 73년에 우열이 뒤바뀌었다)
그렇다면 앞으로 남은 김부자의 선택은 무엇인가. 단순화하면 앉아서
비참한 최후를 맞느냐,핵폭탄으로 동족을 대량 살육해서라도 살아남느냐의
양자택일 뿐이다. 아무리 모질어도 내생명부터 아끼는 인간일진대 전자의
길을 택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여기서 우리는 현명해야 한다. 누가 먼저 치건간에 이 땅에서 핵전쟁을
해선 안된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일만은 막아야 한다.
수가 무엇인가. 인간의 본능에 파고드는 수다. 비참한 최후를
두려워하는 김부자와 그 일족의 생명을 보장해주는 고도의 전략이
필요하다. 그가 반세기동안 저지른 과오는 밉더라도 더 소중한 민족의
장래를 위해서는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그 방법은 있을 것이다. 한.미.일.중.러등의 공동보장으로 "언제든
원하면 망명처를 제공한다"는 징표를 교부할수는 없을까. 가령 대상지로
캄보디아는 어떨까. 시아누크가 오랜 실각기간을 평양에서 융숭한 대접을
받으며 지냈으니 그 빚을 갚는 기회도 될 것이다. 캄보디아가 장소와
안전만 제공하면 생활자금은 아마 자비로도 충당될 것이 아닌가. 그밖에도
찾으면 방법은 많다.
최근 며칠새 미.북 회담의 진전이 있는듯 하지만 역시 장기대책은
못된다고 본다. 패러다임을 바꾸는 발상의 대전환이 긴요하다고 여겨진다.
못한채 93년 한해를 다 보내고 있다. 마치 뜨거운 감자를 맨손바닥에
놓고 쩔쩔매는 모습이다. 미상불 뜨거운 감자야 먹을 욕심만 버리면
내던지면 그만이다.
그러나 북한이란 존재는 상대에 따라 가치를 달리한다. 동족인 우리들
한국인의 입장,근거리의 중국인이나 일본인,그리고 원거리에 있는 미국인과
그밖의 여러나라 사람들에게 새겨진 북한과 김부자에 대한 인식은 천차만별
일 것이다. 적어도 우리로선 북한을 내던질 수는 없다.
올1년중 제기된 북한문제의 핵심은 핵무기다. 서방의 위성사진에 잡힌
영변핵시설을 평양측은 평화목적의 연구시설이라고 우기고 있고,타국들은
그렇다면 국제기구의 사찰을 수용해 무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밝히라는
요구다.
북한이 짜장 핵무기를 가지고 있으면서 버티는지,아니면 허세로 외교상
양동작전을 쓰는지 조차 해석이 엇갈리는 판국이다. 그러나 이문제의
해법은 사실점검에서가 아니라 김부자의 심리를 분석하는데서 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믿는다.
김부자는 한마디로 벼랑으로 뒷걸음질을 치고 있는 상황에 빠져 있다.
그 두사람은 대문을 안으로만 빗장을 잠그고 있을뿐, 밖을 향한 오각은
보통사람 이상으로 작동하고 있다. 그래서 바깥 세계의 급변을 절대
모르지 않을뿐 아니라 누구보다 민감하다.
김부자가 자면서도 가위눌릴 만큼 몸서리치는 장면은 그리도 비슷하면서
사이좋던 루마니아의 독재자 차우셰스쿠가 최후를 맞는 TV사진임에
틀림없다.
김일성주석은 1차로 50년대후반 흐루시초프의 스탈린 격하에서 충격을
받았다. 그 대비책으로 나온것이 소위 주체사상 전략이었다. 그것은
자신의 신격화와 아울러 혈육으로의 후계체제 공고화로 이어진다. 정일이
어리던 70년대초까지는 아우 영주를 후계로 상정했다.
그러나 2촌간인 형제보다는 한마디 사이인 아들밖엔 믿을수 없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혔다. 신분타파를 한 핵심사상으로 하는 공산주의
신봉자가 절대로 범해서는 안될 혈연주의의 금기를 저지르고만 것이다.
그때 이미 운명의 화살은 시위를 빗나갔다.
(그 과정에서 정일자신의 능동적 역할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아버지와 계모 김성애 사이를 20년간이나 이간시키는 난사를 용케도
해냈다. 이복 아우 평일을 따돌리는 직방의 전략이다. 금실이 좋건
나쁘건 한방을 쓰면서 처의 베개송사를 외면할 남편이 있을수 없고,
제 소생을 두둔하며 전실 자식을 헐뜯지 않을 양처는 드문 법이다.
"기쁨조"라고 하는 미인계가 정일의 작품이라는 추론이 가능해진다) 요컨대
김부자는 되돌릴수 없는 자충수의 벼랑길을 지나쳐 올라갔다. 물론 그런
과정에서 남한이 망하리라는 요행을 갈망했다.
쿠데타요,데모요,부패요,지역갈등이요. 하는 남쪽의 간헐적 상황전개가
그런 요행심을 부추기기에 충분했었다.
그런데 용케도 남쪽은 정권을 교체해가며 면면히 지속될뿐 아니라 국력이
그들을 추월하고 남쪽 자본가들은 구소련 중국 동구에 까지 활개를 펴고
있다. (국민 총생산은 64년에,1인당 생산은 73년에 우열이 뒤바뀌었다)
그렇다면 앞으로 남은 김부자의 선택은 무엇인가. 단순화하면 앉아서
비참한 최후를 맞느냐,핵폭탄으로 동족을 대량 살육해서라도 살아남느냐의
양자택일 뿐이다. 아무리 모질어도 내생명부터 아끼는 인간일진대 전자의
길을 택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여기서 우리는 현명해야 한다. 누가 먼저 치건간에 이 땅에서 핵전쟁을
해선 안된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일만은 막아야 한다.
수가 무엇인가. 인간의 본능에 파고드는 수다. 비참한 최후를
두려워하는 김부자와 그 일족의 생명을 보장해주는 고도의 전략이
필요하다. 그가 반세기동안 저지른 과오는 밉더라도 더 소중한 민족의
장래를 위해서는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그 방법은 있을 것이다. 한.미.일.중.러등의 공동보장으로 "언제든
원하면 망명처를 제공한다"는 징표를 교부할수는 없을까. 가령 대상지로
캄보디아는 어떨까. 시아누크가 오랜 실각기간을 평양에서 융숭한 대접을
받으며 지냈으니 그 빚을 갚는 기회도 될 것이다. 캄보디아가 장소와
안전만 제공하면 생활자금은 아마 자비로도 충당될 것이 아닌가. 그밖에도
찾으면 방법은 많다.
최근 며칠새 미.북 회담의 진전이 있는듯 하지만 역시 장기대책은
못된다고 본다. 패러다임을 바꾸는 발상의 대전환이 긴요하다고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