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간인노미야가 자기보다 열 살이나 아래였지만 엄연히 의어머니인지라,
요시노부는 정중히 머리를 숙여 큰절을 했다. 그녀는 자기보다 열 살이나
위인 의아들의 큰절을 받자 무척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자기도 깊이 머리를
숙여 답례를 했다. 그리고 시녀에게 차를 가져오도록 일렀다.

차를 마시면서 요시노부는 자기가 쇼군이 된 뒤부터 지금까지 교토와
오사카에서 벌어졌던 일의 자초지종을 세이간인노미야 앞에 늘어놓았다.
요지는 결국 자기는 결코 역적이 아니라는 얘기였다. 패장의 변명치고는
놀랄만한 논조였고, 능변이었다.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힐 정도로
요시노부는 진지하고 능란하게 지껄여댔던 것이다.

덴쇼인은 그런 요시노부를 놀란 듯이 새삼스러운 눈길로 바라보고 있었다.

세이간인노미야 역시 마찬가지였다. 덴쇼인으로부터 대충 들은 얘기
였지만, 보다 자세한 내막을 당사자의 진지하면서도 절절한 능변으로
들으니 가슴이 온통 얼얼해지는 느낌이었다.

요시노부는 지나간 얘기를 끝내자, 다음은 앞으로의 얘기,즉 휴전을
어떻게 성립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하여 늘어 놓았다.

자기는 공순의 길을 택하여 조정의 관대한 처분을 기다리기로 마음을
굳혔으니, 곧 쇼군 자리에서 물러나 은거하여 근신을 한다는 것이었다.
대신 후계자를 선정하여 모든 처리를 그에게 일임할 것이니, 이나라
만백성의 고통을 덜기 위해서도 이제 전쟁을 그만두고, 그와 협상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휴전의 성립을 위하여 관군이 하코네(상근)로
부터 동쪽으로는 더 발을 들여놓지 말기 바란다는 그런 얘기였다.
말하자면 요시노부의 구체적인 휴전 조건 제시인 셈이었다.

"어머님, 저의 괴로운 심중을 헤아려서 아무쪼록 그런 내용의 탄원서를
조정에 제출해 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요시노부는 열 살이나 아래인
의모에게 서슴없이 "어머님"이라는 호칭을 쓰며 애원을 하는 듯한 간절한
눈길을 보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세이간인노미야는 덴쇼인에게 물었다.

"나 역시 휴전을 바라고 있소. 끝까지 전쟁을 해봐야 덕될 게 뭐 있겠소.
백성들을 위해서나 우리 도쿠가와 가문을 위해서 휴전을 하는 게 옳아요.
그러니까 쇼군의 말대로 그런 조건으로 휴전이 성립될 수 있도록 미야(궁)
가 힘써주기 바라오" "예, 그러지요" 의시어머니인 덴쇼인의 말에 며느리
뻘인 세이간인노미야는 순순히 응낙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