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대통령 경제자문위원을 지낸 토머스 모아씨는 "정부가 국민에게 줄수
있는 최대의 선물은 규제완화다"라고 말한바 있다. 규제가 심한 나라가
규제를 완화하면 국민생활의 코스트가 내려가 생활수준이 향상된다는 것
이다.

이처럼 지당한 말이 한국에서는 효험이 없는 것인가. 정부가 가격규제를
완화한다고 천명하자 공공요금을 필두로 가격인상 러시현상이 나타나 오히려
국민생활 수준이 저하될 지경에 이른 것이다.

연초부터 경제정책당국자들이 허둥대고 있다. 원가인상요인이 발생하면
이를 시장원리에 따라 현실화시켜 가격왜곡현상을 없애겠다고 한것이
엊그제이다. 이것을 손바닥 뒤집듯이 하여 가격관리 강화정책으로 선회했다.
지금까지 20개에 불과했던 가격특별관리 품목을 30개로 늘렸는가 하면 업계
에 대하여는 제품가격동결을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심지어 세무조사까지
내세워 업계를 위협하는 듯한 인상마저 주고 있다.

이런 식의 조령모개정책으로 과연 올해 우리경제가 활성화 될것인지 의문
이다. 행정규제완화는 경제활성화의 한 기둥으로서 정부가 굳게 다짐한 것
인데 첫걸음부터 뒤집혀 넘어졌으니 앞으로 이것이 전반적 규제완화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우려하지 않을수 없다.

물가처럼 예민한 문제에 대하여 왜 차분하지 못하고 덤벙덤벙 정책을
내밀어 혼란을 야기하는지 한심하기 짝이 없다. 이것은 어쩌면 생활개혁
10대과제중 첫번째로 내세운 후진국형 인재라고도 볼수 있다. 정부말을 믿고
원가상승분을 가격에 반영한 업체에 가격을 다시 환원하라고 한것은 행정
소송감이 될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말없이 따르는 것을 보면 기업들이
양순한 것인지, 정부가 아직도 무서운 존재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산업계등 물가와 관련이 있는 각분야 인사들과 진지한 협의를 거쳐 충분한
정지작업을 해놓고 물가정책을 전환했더라면 지금과 같은 꼴은 당하지 않고
올바른 방향으로 전진할수 있었을 것이다. 강요가 아니라 협력에 의해 목표
에 접근할수 있었던 일을 그르친 셈이다. 새로운 정책은 관련분야들의 공동
인식과 역할분담이 전제돼야 하는 것인데 정부가 독주한 것이 탈이라고 할
수있다. 운동하기전에도 준비운동을 해야하는 것이 상식인데 중차대한 정책
에서 그것이 빠지면 액운을부를 소지가 많을 것이다.

또한 가격자율화를 해놓고 가장 먼저 정부가 관리할수 있는 공공요금을 큰
폭으로 올린것도 적절하지 못했다. 그것이 민간부문엔 어떤 신호를 보냈을
것인가. 공공부문의 가격현실화는 무방하고 민간부문의 가격현실화는 금기
라는 생각은 누구도 해낼수 없다. 정부가 먼저 자중했으면 민간부문도 따라
을 것이다.

과도적 값인상이 속출했다고 하여 당장 가격자율화정책을 때려치우고 가격
특별관리와 동결요구로 돌아선 것도 현명하지 못하다. 오래된 정책을 바꿀
때는 진통이 따르게 마련이다. 그 진통을 최소화시킬 노력을 하지 않고
구습으로 후퇴하는 것은 발전의 도식이 아니다. 원가상승요인이 있는데도
이를 덮어놓고 누르기만 하면 가격구조가 왜곡되고 언젠가는 더 큰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것은 뻔한 일이다. 이처럼 분명한 사실을 외면하는 정책은
지속될수 없다.

30개 가격관리 품목중에는 장난감 볼펜등도 들어 있다. 지금 시중상가엔
외국제 장난감등이 홍수를 이루고 있는데 우리제품만 가격관리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궁금하다. 이것이 꼼꼼하게 따진 정책인지 묻고 싶은
것이다.

원칙적으로 가격자유화는 시장참여자유화를 동반해야 한다. 그래야만 시장
경쟁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여 물가가 호순환을 이룰수 있다. 여기에다 시장
개방까지 겹치면 경쟁이 더 치열해져 소비자의 이익이 도모된다. 시장참여
자유화는 제한된채 가격자유화만 단행되면 시장기능은 일종의 불구성을
나타내게 되며 동질적 경쟁만 추구되어 가격의 하방경직성을 면키 어렵다.
총체적 행정규제완화가 시급한 일이다.

경제정책의 이상과 현실이 얼마나 서로 어긋날수 있는가를 우리는 목격
했다. 그렇다고 이상을 포기할수 없다. 진지한 노력과 각계의 협력만 확보
되면 현실을 이상쪽으로 끌고갈수 있다. 정부정책의 준비소홀함을 지적
했지만 정부힘만으로도 어려운 일이다. 산업계의 합리화노력과 협력도 절실
하다.

해빙기의 위험처럼 항상 분위기가 풀어질때 조심하고 자중해야 한다. 각종
의 행정규제완화도 모두의 그와 같은 자세가 없으면 해악을 내포할수 있다.
정부는 조속히 시장기능중시정책으로 돌아와야 하며 산업계등 각계의 협력
으로 이를 밀고가는 것만이 경제활성화의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