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두루마리에는 일곱 가지 동정군의 요구조건이 적혀 있었다.

첫째,도쿠가와요시노부를 비젠번(비전번)에 넘길 것.
둘째,에도성을 비워서 인도할 것.
셋째,병기 일체를 넘길 것.
넷째,군함을 모조리 넘길 것.
다섯째,성내에 거주하는 도쿠가와 가신들은 전원 무코지마(향도)에
옮겨 근신할 것.
여섯째,요시노부의 전쟁 도발을 옆에서 도운 자들은 엄중히 취조하여
처벌할 것.
일곱째,막부의 손으로 가라앉히지 못하는 폭도들은 관군이 진압할 것임.

"다 좋습니다. 그러나 첫째 조건만은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그 일곱
가지 요구조건을 읽고난 야마오카가 말했다.

"왜 첫째 조건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거요?" "왜냐하면 그렇게 될 경우
도쿠가와 가문에 충성을 다하는 부하들이 결코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
니다.
목숨을 걸고 그것을 저지하려고 할게 뻔합니다. 결국 유혈을 초래하고,
그것이 확대되어 걷잡을 수 없는 전란으로 발전할 수도 있지요.
다른 여섯 가지 조건이 첫째 조건 하나 때문에 다 무위로 돌아가고 말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러니까 아무 일 없이 조용히 막부의 문을 닫게
하시려거든 그 첫째 조건만은 철회해 주십시오" 사이고는 약간 곤혹
스러운 듯한 표정으로 말이 없었다.

실은 그 첫째 조건도 애당초의 방침에서 사이고가 자의로 무척
누그러뜨린 것이었다. 동정군을 이끌고 교토를 출발하기 전에 사이고는
요시노부의 처리 문제를 놓고 이와쿠라와 오쿠보 두 사람과 상의를
했었다. 오쿠보는 기어이 셋푸쿠를 주장했다. 혁명에는 반드시 제물
(제물)이 따라야 된다면서, 요시노부를 죽임으로써 한 시대의 막을
깨끗이 내릴 수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이고는 반대를 했다.
죽이면 깨끗이 막이 내려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원한을 남겨 후일에
복수를 꾀하는 불씨가 된다고 하였다. 지난날의 일본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번번이 그렇지 않았느냐면서 왕정복고의 성업을 보다 튼튼하게
다지기 위해서는 그런 불씨를 남겨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왜 어전회의에서는 셋푸쿠를 주장했느냐는 오쿠보의 추궁에
사이고는 그것은 그때 흐릿하게 나갔다가는 다시 온건파가 고개를
쳐들어 요시노부의 술책에 말려들 위험이 있어서 미리 그런 위험을
단호하게 막아버리기 위해 내뱉은 말이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