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고슬라비아에서 물건을 살때는 반드시 마르크화로 환전을 해야한다.
유고 어디를 가나 물품대금으로 마르크화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베오그라드 남쪽으로 1백90Km 쯤 떨어진 크루셰바츠라는 곳에서는
채소 과일 육류 달걀 등 전품목을 마르크화로 흥정하고 있다. 오렌지
1Kg을 3마르크를 줘야하고 바나나 1Kg은 2마르크에 거래되고 있다.

수도인 베오그라드에서 조차도 거의 대부분의 상거래가 마르크화로
이루어지고 있다. 중국및 러시아산 칫솔, 헝가리제 화장지, 스위스
초콜릿, 루마니아산 양말, 그리스 소금 등 모든 품목마다 마르크화로
값이 매겨져 있다.

길모퉁이에서 설탕이나 밀가루를 파는 노점상들도 예외일 수 없다.
버터 한조각을 사더라도 으레 마르크화를 내밀어야 한다.

유고에는 물론 디나르라는 자국 화폐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밖에서 굴러들어온 마르크화가 상전 대접을 받고 있는 것은 유고의
살인적인 초인플레로 디나르화가 휴지조각으로 변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1월 둘째주 들어 디나르화는 마르크당 80만 디나르(14일기준)에
거래되는가 싶더니 1월 셋째주 들어서는 마르크당 4백만 디나르까지
환율이 치솟았다. 그러다 보니 눈만 뜨고 나면 구매력이 떨어지는
디나르화 보다는 마르크화를 요구할수 밖에 없다.

속수무책이던 유고정부는 급기야 24일부터 마르크화와 1대1로 교환
되는 신디나르화를 도입하기로 묘안을 짜냈지만 국민들은 시큰둥할
뿐이다. 늘상 그래왔듯이 정부가 인플레를 잡겠다고, 혹은 경제를
회생시키겠다고 떠들어 대고는 있지만 어느것 하나 제대로 믿을 수가
없다는 식이다.

사과 2Kg 분의 연금으로 생활한다는 한 노파는 "모든게 지긋지긋하다.
독일 점령하에 있던 2차대전 때가 차라리 더 나았다. 그때는 디나르화
로도 얼마든지 물건을 살수 있었다. 생활수준도 지금보다는 훨씬
나았다"라고 강변한다.

최근들어 유고경제는 그야말로 누더기꼴이 됐다. 3년 가까이 계속되고
있는 유엔의 경제제재조치로 질식 상태에 이른데다 베오그라드당국의
크로아티아및 보스니아공화국내 세르비아계에 대한 전비 지원으로 모든
재정이 바닥난상태다. 산업생산은 이미 60년대말 수준으로 추락한지
오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불법적으로 유엔의 경제봉쇄망을 뚫고 유고로
밀수되는 외국 제품들이 판을 치고 있다. 크루셰바츠 뿐만 아니라
인근의 브른야츠카바니아, 자고디나 등 유고 어느곳을 가더라도 외제
밀수품을 쉽게 목격할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밀수품들은 대부분 값이 비싸 상품진열대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많은 유고인들에게는 눈요기에 지나지 않는 것들이다.
미국산 담배한갑이 2.5마르크를 호가하고 있지만 유고인들의 월평균
임금은 고작 10마르크(6달러)에 지나지 않는다. 연금생활자들은
월 5마르크(3달러)의 연금으로 근근히 때워 나가야한다.

농촌 출신의 한 노파는 "오랫동안 고기나 치즈를 먹어 본적이 없다.
그러니 고기맛을 잊은지 오래다. 몇달째 콩과 쌀로 연명하고 있다"며
불만을 토로한다.

유고의 농부들은 "석유나 의약품 등을 살때면 항상 마르크화를 요구한다.
인플레가 잡히지 않는한 디나르화의 푸대접은 계속 될것이다"라고 언성을
높이고 있다.
서방경제전문가들은 이런 상태가 계속된다면 유고슬라비아가 마침내
마르크화경제권이 되고 말것이라고 말한다.

<김병철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