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지능은 천차만별이다. 지능지수가 똑같다하더라도 기억력이나
창의력 응용력이 모두 같을수는 없다. 평등을 중시하는 민주사회에서의
평준화교육은 그런 점에서 취약점을 지니고 있다. 영재와 범재 저능아들이
똑같은 교과과정을 똑같이 공부하다 보면 영재도 저능아도 없는 교육이
되고 만다.

미국이 1957년 소련의 사상 첫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의 발사에 나주 받아
평준화교육제도를 재검토하게 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영재도 저능아도
없는 교육을 하다보니 소련과의 우주개발경쟁에서 뒤지기에 이르렀다는
결론을 얻어 냈다.

그뒤 미국에서는 학년구분을 부분적이거나 전면적으로 폐지고 아동의 학습
진도를 능력에 따라 조절하는 무학년교육제도 일부 주에서 실시되었는가
하면 능력별 학급편성, 대학의 조기학점이수제와 대학의 조기 입학제,
소.중.고의 월반제등을 채용한 주도 생겨나게 되었다.

소련 또한 그에 뒤질세라 58년부터 기술과학과 외국어등의 특수영재학교를
설립하기에 이르렀다.

한국은 해방이후 미국교육제도의 수비 판적인 도입과 69,70년의 중.고교
평준화 실시로 영재를 길러내는 교육에서는 자꾸 멀어져 갈수밖에 없었다.
그에 대한 반성으로 84년 경기과학고를 시발로 특수영재학교가 생겨나게
되었다. 과학기술대학에서 채용한 조기대학입학제 또한 그 일환이라 할수
있다.

선진외국들에서는 오래전부터 있어왔던 예술계의 특수영재학교제도가 최근
에야 종합예술학교로 탄생하게 된 한국이고 보면 교육제도의 후진성이 어느
정도였는가를 미루어 짐작케 한다.

정부가 지난 91년부터 실시하겠다고 공언했다가 무산된 월반제를 또다시
들고 나왔다. 평준화정책의 반성으로서는 수금이 가는 일이지만 오랜동안
교육정책당국이 기치로 내건 전인교육이라는 관점에서는 문제점이 없을수
없다.

영재교육이 특수하게 요구되는 예술분야나 과학기술, 체육분야에는 월반제
가 아닌 무학년제를 채용하더라도 타당성이 있다. 그러나 빼어난 지능과
기능이 요구되지 않는 분야까지도 그 제도를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교육 본래의 기능을 해칠 소지가 많다.

교육은 지식의 축적만이 아니고 하나의 인격체를 완성시키는 과정이다.
"교육의 목적은 기계를 만드는데 있는것이 아니고 사람을 만드는데 있다"는
루소의 경고를 당국자들은 한번쯤 음미해 보아야 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