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은행장 수난연보..81년이후만 15명 불명예 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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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제도권 "큰손"이 제도권 "큰손"을 몰아냈다. 그것도 4명씩이나.
이번에 김영석 서울신탁은행장과 선우윤 동화은행장이 퇴진하게 됨으로써
장영자씨는 "큰손"답게 4명의 은행장을 그만두게하는 "기록"을 세웠다.
지난82년 단군이래 최대의 사기극으로 임재수 당시 조흥은행장과 공덕종
당시 상업은행장이 퇴진했다.
이들은 불명예퇴진에 그치지않고 구속까지 당했다.
이외에도 각종 비위사건과 관련해 물러난 은행장들은 많다.
지난79년이후에만해도 18명의 은행장들이 퇴진했다.
멀게는 율산사건에 연루된 홍윤섭당시서울신탁은행장부터 지난해 사정으로
줄줄이 물러난 김준협 서울신탁 이병선 보람 박기진 제일 김재기 외환
안영모 동화은행장이 그들이다.
이중 안영모전동화은행장과 이병선전보람은행장은 한번도 하기 어렵다는
은행장 자리에서 두번씩이나 불명예퇴진한 "진기록"을 남겼다.
이들의 퇴진 사유는 크게 두가지.
정권교체기의 물갈이차원(사정)에 의한 것이 첫번째다.
다른 하나는 대형금융사고관련이다.
이밖에도 지난83년 버마아웅산사건이후 물러난 안영모 당시 한일은행장은
"괘씸죄"로, 지난90년 5.8조치이후 물러난 이병선 당시 한일은행장은
부동산투기 억제에 대한 정부의 의지 과시를 위한 "희생양"으로 얘기되고
있다.
이번에 김영석 서울신탁은행장과 선우윤 동화은행장이 퇴진하게 됨으로써
장영자씨는 "큰손"답게 4명의 은행장을 그만두게하는 "기록"을 세웠다.
지난82년 단군이래 최대의 사기극으로 임재수 당시 조흥은행장과 공덕종
당시 상업은행장이 퇴진했다.
이들은 불명예퇴진에 그치지않고 구속까지 당했다.
이외에도 각종 비위사건과 관련해 물러난 은행장들은 많다.
지난79년이후에만해도 18명의 은행장들이 퇴진했다.
멀게는 율산사건에 연루된 홍윤섭당시서울신탁은행장부터 지난해 사정으로
줄줄이 물러난 김준협 서울신탁 이병선 보람 박기진 제일 김재기 외환
안영모 동화은행장이 그들이다.
이중 안영모전동화은행장과 이병선전보람은행장은 한번도 하기 어렵다는
은행장 자리에서 두번씩이나 불명예퇴진한 "진기록"을 남겼다.
이들의 퇴진 사유는 크게 두가지.
정권교체기의 물갈이차원(사정)에 의한 것이 첫번째다.
다른 하나는 대형금융사고관련이다.
이밖에도 지난83년 버마아웅산사건이후 물러난 안영모 당시 한일은행장은
"괘씸죄"로, 지난90년 5.8조치이후 물러난 이병선 당시 한일은행장은
부동산투기 억제에 대한 정부의 의지 과시를 위한 "희생양"으로 얘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