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서울대입구하나은행장께서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난
한해는 계획보다 좋은 실적으로 마감했습니다. 노력해주신 모든 지역
하나은행장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모쪼록 올해도 여러 은행장님들께서
좀더 분발해주시기 바랍니다" 지난 22일 오후2시.
하나은행 영업추진회의가 열리고있는 서울조선호텔 1층회의실에선 이런
말들이 흘러나왔다. 이 말의 주인공은 윤병철하나은행장. 그러나 회의장
엔 윤행장말고도 "하나은행장"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49명이나 더 있다.
이들 49명의 하나은행장들은 호칭에 걸맞게 회의장 가운데에 차례차례
이들의 한쪽편엔 10명의 본점부.실장과 8명의 임원이 "배석"해 있다.

49명의 하나은행장. 이들은 다름아닌 지점장과 출장소장들이다.
그런데도 하나은행에선 지점장이나 출장소장이라고 부르지않는다. 굳이
"압구정하나은행장"식으로 부른다.

하나은행이 추구하는 "영업점우선주의(지역 하나은행주의)"는 이같이
호칭에서부터 극명하게 드러난다. 지역하나은행주의란 한마디로 각
영업점을 독립경영체제로 운영한다는것.

그러나 "지역하나은행장"이란 호칭은 어쩌면 상징에 불과하다.
지점운영을 들여다보면 지역하나은행주의가 무엇인지를 금방 알수있다.
우선 내부적으로 지점과 출장소의 구분이 없다. 지역내 유일한 하나은행
인만큼 취급업무는 다를지언정 내부에선 똑같이 대접한다.
영업점장회의에선 대형 중형 소형지점의 지점장 출장소장순으로 앉는
법이 없다. 영업점이 문을 연 순서대로 자리가 정해진다. 영업점에서
사용하는 자동차(쏘나타)조차 지점과 출장소가 똑같다.

이는 인사에서도 똑같이 나타난다. 지난해 인사때는 지점장 2명이
출장소장으로 "좌천"됐다. 그러나 본인들은 물론 은행직원들조차
이를 좌천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등한 점장인만큼 하나도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또 일선 영업점장을 하다가 본점부서 과장으로 들어
오는것도 다반사이다. 현재 하나은행은 3급(과장급)이상이면 영업점장을
할수있도록 돼있다. 지금은 1급 13명, 2급 30명, 3급 6명이 "하나은행장"
으로 활약하고있다. 이들의 급수는 분명 다르다. 그러나 급수대로 대형
점포장을 맡고있는건 아니다. 철저히 능력에 따라 지역을 분할한다.
말그대로 "소행장"직을 수행하고 있다.

함종희천호동지점장은 지난 10월말 올해 업무계획서를 확정하는데
애를 먹었다. 자신과 지점직원들이 내부적으로 설정한 올해 수신목표는
1천5백억원. 당시 총 수신 (8백억원)의 배에 달하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이같은 목표는 아무래도 무리라는 주위의 "강권"에의해 1천3백억원으로
줄여잡았다. 천호동지점은 지난 21일현재 1천2백30억원의 총수신으로
올목표에 거의 근접해 있다. 수신목표를 본점의 강요에의해 줄인
점포는 많다. 압구정지점이 2천억원에서 1천8백억원으로, 광화문지점이
1천3백50억원에서 1천억원으로 깎였다.

이같은 현상은 지점경영이 그만큼 독립적인데서 기인한다. 업무계획
이나 예산편성 모두 철저히 영업점이 알아서한다. 본점은 전체적인
균형을 봐서 이를 조정할 뿐이다. 자금조달(수신)을 많이하면 운용
(여신)도 그만큼 할수있다. 말도 많은 업무추진비도 마찬가지다.
대형점포 "000만원 중형점포 00만원 소형점포 0만원"이란 일률적인
규정이 하나은행엔 없다.
여.수신이나 이익이 증가함에따라 업무추진비도 늘어난다. 능력에
맞게 비용을 충분히 주겠다는 것이다.

호칭뿐만아니라 내용으로도 외국계은행에서만 볼수있는 "독립채산제"
에 가까운 셈이다.

일선 영업점이 이런 독자적인 횡보를 할수있는것은 하나은행의 경영
풍토와 직결돼 있다. "그 지역을 대표하는 하나은행인만큼 본점은 그저
각 하나은행을 열심히 지원만 하면 그만이다"(안명수상무)는 분위기가
강하다.
공식 회의석상에서 조차 "내년도 업무계획중 비계수적인 업무계획이
있다면 해당부서(고객 융자 국제부 등)에 보내주기 바라며 이를 취합
조정하여 본부의 지원방안을 마련하겠다"(김승유전무.작년12월 영업
추진회의)는 식이다.

현재 은행감독원 규정엔 "영업점"이나 "지역은행"이란 개념은 없다.
지점과 출장소만 있을 뿐이다. 공식적인 문서 등에는 "<><>하나은행"
이나 "<><>영업점"이란 호칭은 쓰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부적으론 여전히 압구정하나은행이다. 영업점독립경영이란 정신을
계속 이어나가야 한다는 취지에서이다.

하나은행이 굳이 지역하나은행주의를 고집하는것에는 점포망열세를
만회하려는 속셈이 깔려있다는 것도 부인할수없다. 그러나 이것도
경영전략임에 분명하다. 특히 기존 은행들마저 출장소위주로 점포를
개설하고 적자점포를 과감히 폐쇄하는 것이 하나의 흐름이고 보면
하나은행의 영업점전략은 분명 앞서가고있음에 틀림없다.

하나은행은 분명 후발은행이다.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하고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영업점전략만은 분명 "성인은행"보다 한
걸음 빨리 가고있다. 벌써 49명의 하나은행장들이 일류로 달려가고 있다.

<하영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