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석준 상공장관은 내가 장관실로 들어서자 "우리 같이 일해봅시다"하면서
악수를 청했다. 당시 국제경제연구원과 한국과학기술정보센터를 한국산업
경제기술연구원(현산업연구원)이란 이름으로 통합,상공부산하의 산업정책
연구기관으로 발족시키는 일을 맡아 달라는 것이었다.

"이 일을 맡을 사람을 지금까지 여러사람 추천했으나 전대통령재가를 받지
못해 부득이 박행장을 추천했더니 쾌히 재가가 났다"며 결재서류의 대통령
사인까지 보여주었다.

나는 평소 한국경제발전은 상공부의 산업정책을 경제기획원 재무부 한국
은행등이 재정정책과 금융정책수단을 총동원해서 지원했기 때문에 가능
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상공부의 산업정책개발에 참여할 수
있도록 자리를 준 서장관과 전대통령에게 감사하는 마음가짐을 갖고 열심히
일해보겠다는 결심을 했다.

나는 두기관의 원장직과 소장직을 겸임하는 발령부터 받고 통합작업을
서둘렀다. 그러면서도 당시 경제가 침체에서 좀처럼 헤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정부의 고금리정책때문이라 믿어 연구원장의 위치에서도 금리부터
낮추는 노력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한국경제신문사 이규행사장도 나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것을 알고 단
둘이 점심을 먹으면서 의논한 결과 내가 글을 쓰고 이사장이 신문에 실어
그것을 요로에 배포해 보자는데 합의했다.

나는 이글에서 고금리정책의 폐해부터 지적했다. 첫째 고금리는 학자들의
주장처럼 물가를 안정시키는 것이 아니라 금융비용 증가와 제품 생산원가
인상을 유발,오히려 비용상승으로 인한 인플레의 원인이 된다고 지적했다.

둘째 자금수요가 전통경제이론처럼 감소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 누적된
기업 부채에 대한 이자부담 가중때문에 오히려 늘어난다는 은행장 때의
경험을 설명했다.

셋째는 대출증가로 늘어나 통화량은 고금리로 인한 추가 금리부담에 사용
되어 기업투자와 생산증대 자금으로 유효하게 사용되지 못해서 경제는 회복
될수 없고 마지막으로 이자소득 증가로 돈부자만 배불리는 결과를 낳는다고
주장했다.

이런 이유를 들어 침체된 경제 회복을 위해서는 금리부터 인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사장은 81년11월18일자 한국경제신문에 "저금리라야 긴축효과 더커"라는
제목을 붙여 한면에 이 글을 게재했다.

그당시 기업인들사이에선 "차라리 공장을 팔아 그돈을 은행에 예금해놓고
높은 이자를 받아 편안하게 살 일이지 내가 왜 제조업을 하는지 모르겠다"
는 말들이 유행할 정도였다.

이사장이 귀뜀해준 말에 의하면 개혁주도인사들이 내가 쓴 글을 요약해서
전대통령에게 건의했고 전대통령은 이미 한국은행과 재무부에 금리인하를
지시했다는 것이다.

국회에서도 금리를 낮추라는 야당의원들의 질문공세에 정부당국자가 "금년
에는 금리인하 계획이 없다"고 답했다가 전대통령의 금리인하 지시가
나갔다는 말을 뒤늦게 듣고 다음날 기자회견에서 "금리는 변동될수 있다"고
전날 국회답변을 뒤집는 해프닝도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뚜껑을 열어보니
18%인 금리를 17%로 1%포인트 낮추는데 그쳐 실망이 컸다.

그래서 나는 김재익경제수석비서관을 설득해보기로 하고 국제경제연구원
박영철박사(현원광대교수)를 팀장으로 해서 "미국은 고금리정책으로 경제가
침체되고 실업률이 사상 최고로 올라간데 반해 일본과 서독은 저금리 정책
으로 견실한 성장을 거듭하고 특히 대미수출 증가로 무역 흑자가 일본은
4백억달러,서독은 2백억달러를 기록하고 있다"는 요지의 연구보고서를
만들었다.

김수석은 박박사의 브리핑은 반도 듣지않고 화를 내기 시작해 나는 이
연구논문을 폐기하겠다고 약속하고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김수석은 그후
한달만에 나를 보자고 하더니 금리를 일본수준으로 낯추려고 하니 협조해
달라고 했다. 김수석이 나의 주장을 받아준데 대해 기쁘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