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년 12월 어느날. 예고없는 갑작스런 정전으로 말레이시아 수도
콸라룸푸르와 인근 지역은 12시간동안 공장가동과 사무실업무가 마비
되고 말았다. 이날 예고없는 정전으로 특히 전자업체들의 피해가 컸다.

말레이시아의 소니공장들은 무려 2백만달러의 손실을 입었다. 이날 마침
말레이시아공장을 둘러보기위해 콸라룸푸르에 머물고 있었던 모리타 아키오
소니 회장은 라피다 아지즈통상장관을 만난자리에서 "전력사정이 이런식으로
악화되면 앞으로 외국자본과 기술을 도입하는데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모리타 아키오 소니회장의 경고성 충고에 대한 말레이시아의 반응은 말
그대로 전광석화. 즉시 관계장관회의를 열고 대책을 협의한후 그 이튿날
전력사업을 민영화한다고 발표했다. 그 이후 지금까지 40억달러에 달하는
5개 전력공급사업이 민간자본으로 추진됐다. 이제 전력걱정은 한숨 덜었다.

말레이시아에는 국영기업 민영화붐이 절정에 달해있다. 전력공급에서
부터 전신전화 역세권개발 항만서비스까지 민간에 맡기거나 민간자본을
끌어들이고있다. 심지어 우체국(Malaysian Postal System)까지 민영화하는
방안을 마련중이다. 말레이시아는 공기업민영화에 관한한 선진국이다.

세계적으로 국영기업매각붐이 일어나기 훨씬 전인 지난 83년부터 민영화에
착수,지금까지 무려 77개 공기업을 팔아치웠다. 민간에 공기업자산을 몽땅
팔아넘긴 경우가 34건,민간에 임대하는 식으로 민영화한 것이 2건,소유권은
정부에서 계속 갖고있으면서 민간에 경영을 위탁한 경우가 5건등 민영화방식
도 다양하다. 전세계 어느 정부도 이처럼 과감하고 조직적으로 민영화를
추진한 전례가 없다. 말레이시아 정부의 과단성과 정책의 일관성을 엿보게
해준다.

탄스리 아마드 사르지 총리실 장관은 "말레이시아가 공기업경영개혁차원
에서 추진중인 민영화는 여러가지 포석을 깔고있다.

처음엔 경기부양적인 시각에서 추진되었지만 이제 자본시장육성과 국민주
보급을 통한 중산층 육성,그리고 외국자본유치수단으로도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말레이시아 해운항만청은 수도권 클랑 컨테이너 항을 민영화하는 과정에서
말레이시아기업뿐만아니라 호주의 컨테이너터미널 운영업체인 P&O까지
끌어들였다. 국가기간산업에도 외국자본이 얼마든지 환영받는다.

말레이시아는 21세기에 가장 각광받을 정보통신분야도 민간으로 이관하고
있다. 텔레콤말레이시아는 87년부터 기업을 공개하는 방식으로 민영화에
착수,작년에 1백% 민간기업으로 변신했다. 이 과정에서 12억달러상당의
지분이 일반주식투자자들에게 돌아갔다. "택시운전사와 가정주부까지
주식을 갖도록하겠다"는 마하티르총리의 국민주보급계획이 민영화와 더불어
추진되고있다. 말레이반도 북부산악지대에서 싱가포르에 이르는 총연장
6백마일의 반도횡단슈퍼하이웨이는 레롱이라는 민간그룹에 맡겼다. 레롱은
투자비 30억달러를 마련하기위해 4억달러규모의 상환사채를 발매했다.
민영화로 채권시장도 활황이다. 모건 그린필의 스테판 에드워드 투자상담
역은 "말레이시아는 민영화를 통해 실물경제와 자본시장을 동시에 육성
시키는데 성공하고있다"고 평했다.

민영화를 통한 텔레콤의 경영쇄신과 도로부문의 민자유치성공에 고무된
말레이시아 정부는 페트로나스 국영석유회사와 프로톤사가자동차의
지주회사인 국영중공업도 민영화하기로 했다.

철도도 민영화명단에 올라있다. 동남아 최장의 철도망을 자랑하는
말레이시아철도청(KTM)은 97년까지 민영화를 매듭지을 계획이다. 새
철도노선에서 부터 역세권개발을 모조리 민자로 추진,민간의 지분을 계속
높여나가는 방식으로 민영화시킬 계획이다.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민간자본
유치와 운영주체의 민영화를 병행하려는 것이다. 철도청의 민자유치리스트
는 계속 길어지고 있다. 북쪽 태국철도와 남쪽 싱가포르 철도를 연결해
3국간 철도망을 연계하는 프로젝트,세팡의 신공항 등이 계속 추가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방자치단체도 민영화 민간자본유치에 뛰어들고 있다.

콸라룸푸르시는 파키야트 역세권개발에 민간자본을 끌어들여 종합터미널
백화점 호텔 오피스빌딩등을 유치할 계획이다.

시당국은 땅만 제공하고 개발계획의 입안단계에서부터 건설 운영까지 모두
민간에 맡기기로 했다. 서울시 같았으면 시산하 공사를 만들어 공무원들이
차고앉을 자리를 마련하려는 생각부터 먼저 했을 것이다.

어느 나라 정부든 국영기업을 팔아넘길때 가장 고심하게되는 부분이
주인없는 회사에서 안주해온 직원들의 반발이다.

말레이시아는 이처럼 대대적인 민영화작업을 추진해오면서도 이런 마찰을
거의 겪지않고 있다.

민영화플랜을 짤 때부터 고용안정대책을 최우선적으로 마련함으로써
공기업직원들의 불안을 사전 봉쇄할수 있었다.

공기업 민영화후 5년간은 직원을 해고하지 못하도록 조건을 달고있다. 또
민영화된 즉시 종업원지주제를 도입,지분 5%이상을 종업원에게 나눠주는
것을 의무화했다.

클랑컨테이너항의 민영화를 담당했던 압둘 사메드 모하메드 클랑항만청
전무는 "이런 조건에도 만족하지못하는 직원들은 민영화대상이 아닌 다른
공기업에 잔류할수 있는 길도 마련해 주었다. 국영기업 민영화의 성패는
기존직원들의 동요를 방지할수 있는 고용안정대책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이동우.안상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