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학 기틀다진 학계 거봉 .. 타계한 이숭녕박사의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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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타계한 심악 이숭녕박사(86)는 우리 학계의 거봉으로 해방후 혼란상태
에 있던 국어학계의 기틀을 잡은 인물이다.
33년 경성대 법문학부를 졸업한뒤 평양사범 국어교사로 교육계에 첫발을
내디뎠던 이박사는 50년간 강단에서 후학들을 가르치는 한편 계속 연구활동
에 정진, 후배들의 귀감이 됐다.
"군인이 전선에서 죽는 것이 영광이라고 한다면 학자는 연구하다가 책상
머리에서 쓰러짐이 당연하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던 그는 45년부터
서울대 국문과에서 30년간 국어사및 문법론등을 강의해 오면서 체계적인
국어학정립에 노력해왔다.
특히 중세국어의 음운및 문법 형태연구에 심혈을 기울였으며 비교언어연구
에도 늘 관심을 가져왔다.
"학자에게는 논문이 생명"이라는 신념을 가졌던 그는 1백20편이 넘는 논문
을 발표, 국어학계에서 가장 논문을 많이 쓴 학자로 손꼽히고 있다.
73년 서울대대학원장을 끝으로 정년퇴직한뒤 한양대명예교수 한국정신문화
연구원장 문화재위원장 백제문화연구원장등을 역임했다.
그는 특히 초대 대한산악연맹회장을 지낼만큼 산을 사랑했고 검도 스케이트
수영등 만능스포츠맨으로 이름을 날렸다. 80세이후에도 5시간만 잠을
자면서 학문탐구에 몰두해온 것으로도 유명하다.
에 있던 국어학계의 기틀을 잡은 인물이다.
33년 경성대 법문학부를 졸업한뒤 평양사범 국어교사로 교육계에 첫발을
내디뎠던 이박사는 50년간 강단에서 후학들을 가르치는 한편 계속 연구활동
에 정진, 후배들의 귀감이 됐다.
"군인이 전선에서 죽는 것이 영광이라고 한다면 학자는 연구하다가 책상
머리에서 쓰러짐이 당연하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던 그는 45년부터
서울대 국문과에서 30년간 국어사및 문법론등을 강의해 오면서 체계적인
국어학정립에 노력해왔다.
특히 중세국어의 음운및 문법 형태연구에 심혈을 기울였으며 비교언어연구
에도 늘 관심을 가져왔다.
"학자에게는 논문이 생명"이라는 신념을 가졌던 그는 1백20편이 넘는 논문
을 발표, 국어학계에서 가장 논문을 많이 쓴 학자로 손꼽히고 있다.
73년 서울대대학원장을 끝으로 정년퇴직한뒤 한양대명예교수 한국정신문화
연구원장 문화재위원장 백제문화연구원장등을 역임했다.
그는 특히 초대 대한산악연맹회장을 지낼만큼 산을 사랑했고 검도 스케이트
수영등 만능스포츠맨으로 이름을 날렸다. 80세이후에도 5시간만 잠을
자면서 학문탐구에 몰두해온 것으로도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