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경제가 계속 비틀거리고 있다. 80년대후반 플라자 합의에 의한 엔고
허들을 가쁜히 뛰어넘음으로써 엄청난 저력을 발휘했던 일본경제가 지금
3년여 골짜기를 맴돌며 비틀거리고 있다. 이것은 한국경제로 보아 큰 호기
이기도 하고 연쇄불황의 위기상황이기도 하다.

일본경제가 왜 이렇게 비틀거릴까. 필자가 보기에는 대체로 3가지의 견해
가 있는것 같다. 하나는 경기순환론의 입장이다. 경기순환론의 입장에도
단순한 재고조정불황으로 곧 회복된다고 보는 견해,대불황으로 보고 95년
후반쯤에 가야 회복의 기회가 올것으로 보는 견해,혹은 60여년만에 찾아온
공황으로 보는 견해등이 나와있다.

다른 하나는 구조적위기로 보는 입장이다. 구조적 위기론 가운데도 다시
경기의 순환적 불황에 겹쳐 80년대 후반이래의 거품붐이 꺼지자 엄청난
자산디플레현상이 생기고 은행들이 60조엔을 넘는 불량채권을 안아 은행
구실을 못하게 됨으로써 자산디플레불황이 겹치게 된 소위 복합불황론이
있다. 또한 세계적인 코스트삭감경쟁에 일본의 종신고용제가 매우 불리하게
되었다는 "일본적 경영"위기론과 현대의 리스트럭처링의 물결에 대기업이
적응하기 어렵게 되었다는 대기업병론도 구조위기론에 속한다고 하겠다.

마지막 하나는 이행론이다. 지금 세계경제는 제품을 생산하는 공업화 단계
에서 지식산업중심의 정보화단계로 이행하고 있는데,미국은 탈공업화과정을
겪음으로써 정보화단계로의 이행에 성공하고 있지만 일본은 제조업을 원
세트로 끌어안고 있음으로써 지식.정보화단계로의 이행이 극히 어렵다는
것이다. 피터 드럭커교수는 일본의 이행기의 진통은 앞으로도 5~8년정도는
계속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세가지의 견해는 모두 그나름의 타당성을 갖고 있는 것 같고,그런
점에서 오히려 이세가지현상이 함께 겹쳐져 동시에 존재하고 있는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런데 문제는 이 세가지현상이 함께 존재하면서도 그것이 서로 상충되고
있다는데 있다. 가령 단순한 불황이라면 수요진작정책을 써야하는데 그렇게
되면 불황문제는 우선 좀 좋아질지 모르나 다시 거품경제조짐이 일어나
구조적 불황을 오히려 심화시킬수 있다.

또 가령 구조적 불황에 초점을 맞추어 코스트다운을 위한 해고나 임금
깎기를 실시하면 국제경쟁력은 일시적으로 회복될수 있으나 일본경제의
소프트화 정보화에의 이행은 오히려 더욱 지체되어 더큰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 또한 해고나 임금깎기정책은 국내수요를 감퇴시켜 내수불황에
의한 불경기 재래의 가능성도 매우 높다.

그런가하면 정보화단계로의 이행에 초점을 맞추면 불황의 회복에 더욱
늦어질 위험이 크다. 그러니까 이세가지현상이 소위 "마의 삼각구조"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이경우 정책선택이 매우 어려워진다.

이러한 마의 삼각구조는 실은 일본만의 특수한 현상이 아니다. 한국경제도
어느정도 마의 삼각구조에 빠진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한국경제가 불황타개를 수출증가에서 찾고 수출증가를 임금코스트의 절감
에서 찾는 쪽으로 간다면 생산기술력의 향상을 위하여 노동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방향과는 역행하게 된다. 또 생산기술력향상에 초점을 맞추면 임금
코스트면에서 단기적으로 불리하게 되는 딜레마에 직면하고 있다.

80년대 후반 싱가포르는 이경우 생산기술력향상쪽을 택하여 오히려 임금
상승정책을 실시한 결과 가격경쟁력의 저하로 2~3년간 어려움을 겪었으나
그후 품질경쟁력이 향상되어 지금은 거의 선진국의 문지방을 넘어선 상태
이다.

또한 한국경제가 소프트화 정보화쪽에 역점을 두게되면 제조업의 경쟁력
회복문제와 부딪치게 된다. 그렇다고 정보화산업육성을 게을리하게 되면
선진국 진입의 기회를 잃게된다. 그런점에서 크든 적든 한일양국은 비슷한
마의 삼각구조에 빠져 있는듯한 현상을 볼수있다.

그런데 문제는 일본경제가 "마의 삼각구조"를 빠져나오는 정책선택이
한국경제에 큰 영향을 준다는 사실이다. 일본이 만일 불황극복을 해외로
부터의 수입제한이나 임금절감에 의한 가격경쟁력의 회복으로 해결하는
쪽으로 간다면 한국의 수출증가에 큰 타격을 줄수있다. 사실 2일 발표된
임금통계를 보면 최근 일본의 임금 상승률은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일본경제의 구조적인 위기를 심화시킨다. 일본의 불황은
근본적으로 과익공급능력을 수요가 따라가지 못하는데서 생긴 것이기 때문
이다. 그래서 일본정부가 규제를 과감히 철폐하여 일본의 수입자유화를
확대하면 한국이나 동아시아각국의 대일수출이 증가하고 그결과 일본내의
각종 규제에 의하여 유지되고 있는 저경쟁력산업이 후퇴하거나 아시아
각국으로 진출하게 된다. 그결과 동아시아규모의 국제적산업조정이 이루어
질수있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공업발전의 일대 기회가 될수있다. 일본은 이것을
산업공통화라고 부정적으로 보아 왔지만 최근 소프트웨어나 정보화에의
후진성이 명확하게 나타나면서부터 그것을 공동화라고만 볼것이 아니라
정보화로 나아가기 위한 "탈공업화"로 긍정적으로 보려고 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탈공업화단계에서 정보화단계로의 진입에는 시간이 걸리고 그
사이에 실업문제가 심각해 질수 있다. 그런점에서는 소위 "질서있는 탈
공업화"가 필요하고 그것을 위해서는 국제적 협조가 필요하다. 한국은
이러한 상황을 잘 파악하고 그 기회를 전략적으로 살려 동아시아 수평
분업의 신세대를 벌여나가야 할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정보화단계로의 진입을 지체시키는것이 되어서는 결코
안된다.

우리는 일본경제가 마의 삼각구조를 빠져나오는 과정을 예의 주목하면서
한국경제가 마의 삼각구조를 빠져나오는 길을 글로벌한 시야에서 전략적
으로 세워야 할것이다. 정부의 정책전략능력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