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르트르는 사람을 "망망대해에 떠있는 나비"에 비유했다. 나비의 생존
여부는 그의 지속적인 날개짓에 달려 있다. 날개짓을 멈추면 그것으로
마지막인 것이다.

요즈음 들어 "신기술만이 우리의 살길"이라는 구호가 난무하고 있다.
개방화 시대에 살 길은 이 길 밖에 없다는 것이다. 기술개발을 멈추면
"나비가 날개짓을 멈추는 것"과 다를바 없다는 논리다. 그러나 과연 어떤
신기술이 우리에게 "보다 많은 빵"을 보장해 줄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부족한 것은 안타까운 현실이다. 신기술개발이 반드시 "보다 많은 빵"과의
동의어는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이 우주를 개척하면서 개발한 기술들은 말 그대로 "최첨단"그것
이었다. 지구밖의 한계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기술이 필요했고
따라서 여기에 투여된 자금 또한 천문학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그 기술개발의 뒤안에서 톡톡히 재미를 본 사람들은 정착 미국인
들이 아니라 일본등 경쟁국들이었다. 이들은 미국인의 화려한 그늘뒤에서
열심히 배우고 복제하여 소비자들이 좋아하는 제품으로 탈바꿈시켜 막대한
부를 축적해 온 것이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공연료는 다른 사람이 챙긴
결과이다.

수출이 잘 된다는 반도체는 신기술의 상징처럼 여겨지고 있다. 16메가
D램칩이 70달러에 팔리고 있어 무게로 따져보면 금값의 3배라는 것이다.
이 회사들이 이익을 남기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그러나 이들 기업의
눈빛에서 "행복해하는 모습"을 찾아볼수 없다는 것을 이상한 일이다.
뜻밖에 이들의 얼굴빛에는 "살아남기 위해"끊임없이 날개짓을 해야하는
나비의 고통스런 표정이 역력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느낌이다.

어떤 기업이 1년에 100억원의 흑자를 남긴다고 할지라도 그열배인
1,000억원의 투자를 해야 한다면 현금흐름상 900억원이 부족하게 된다.
1,000억원이라는 돈이 10년,20년을 내다보고 바둑의 포석을 깔아 놓듯
여유를 가지고 이루어지는 투자라면 걱정할 일이 아니지만 "종말을 고할수
밖에 없는 나비신세"가 되지않기 위해 "할수 없이 하는 투자"라면 손에 쥔
100억원이라는 흑자가 안중에 들어오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전자산업의 투자수요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상품의 진부화
기간"도 날이 갈수록 짧아지고 있다. 이런 현상은 점점 더 심해질 것이다.
지난 3년동안 국내의 대표적 전자업체가 남긴 영업순이익은 90년 730억원,
1991년 686억원,그리고 92년 724억원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였지만 같은해
시설에 소요된 투자규모는 각각 7,400억원(90년),8,000억원(91년),7,500억
원(92년)이었다.

이는 벌어들인 돈을 모조리 신규투자에 쓸어 넣고도 순익의 10배에 달하는
자금을 추가로 차입해야하는 현금흐름상의 어려움을 안고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치 무한경쟁하에서 한없이 빨아들이기만 하는 블랙홀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날개짓을 계속하고 있는 것과 다를바 없는 모습이다.

마라톤 경주에서도 일등으로 나서고 또 이를 유지하는 것은 매우 함든
일이다. 한계적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기술을 개발하는 데는 엄청난 돈이
들지만 그 "직접적인 소득효과"는 기대이하일 경우가 많다. 이런 점을
감안해 볼때 남들이 한다고 무턱대고 블랙홀의 흡인력에 몸을 내 맡기고
깊은 수렁으로 빨려들어가는 것만이 능사인가를 신중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경주는 한번 하고 마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가 현 발전단계에서 필요한
것은 첨단 기술을 개발했다거나 보유했다는 자존심이 아니라 그 기술의
보유에 따른 실질적인 "혜택을 증가시키는 일"이다. 다가올 미래를 위해
국가자원 리스크의 최소화와 운용 효율화라는 명제를 염두에 둘때는
"최첨단만이 능사가 아니다"는 역설도 가능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