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본주재 한국대사가 일본의 영화 가요 만화등 수입이 허용되고 있지
않은 대중문화분야에 대한 선별문호개방을 검토해야할 단계에 와 있다고
주장한 것을 계기로 이에 대한 찬반양론이 또다시 제기되었다.

물론 정책당국인 문화체육부가 이를 "시기상조"라고 못박음으로써 이 일이
예전처럼 답보상태에 머물게 되었지만 그러한 문화적 폐쇄주의가 얼마만큼
현실적으로 실효성이 있는것인지 생각해 보아야할 시점에 와 있는것 같다.

일본 대중문화에 대한 완전문호개방을 반대하는 입장은 대략 세가지가
있다.

그 하나는 "국민정서가 이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국민들의
정서에 아직도 일제식민통치에 대한 반감과 그에서 비롯된 피해의식이
잠재해 있기 때문에 일본의 대중문화를 받아들여서는 안된다는 입장이다.

해방이 된지 반세기가 되는 해인데도 한일국교정상화이후 30년동안
되풀이해온 "국민정서"라는 이유를 또다시 들고 나오는 것은 역사적
열등감을 자인하는것 같은 느낌을 떨쳐버릴수 없다. 이제 우리도 일본과
대등한 입장에서 줄것은 주고 받을것은 받는 어른스러움의 풍도를 지녀야할
때가 되지않았는가.

또 하나는 문화개방이 되면 한국이 온통 일본대중문화 상품의 시장이
되고말 것이라는 우려감에서 나온 방어론이다. 대비책이 마련된 뒤 개방을
하지않는한 문화교역에서 역조를 더욱 심화시키게 될것이라는 것이다.
이미 우리 사회에는 음성적이지만 직.간접으로 일본대중문화 상품이 침투해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일본인들이 할리우드의 유명영화사들을 사들이거나 주식을 대량으로 매입
하여 제작한 일본풍의 영화들이 미국영화의 허울을 쓰고 한국에 상륙한바
있다. 일본 가요의 해적판 테이프가 버젓이 활개를 치면서 팔리고 있는가
하면 밀수입된 CD나 레코드판이 적지 않게 점포에 나와 있다.

더욱이 지난 89년 정부가 위성방송수신 안테나 수입을 자유화한 뒤 일본
위성방송을 시청하는 가정이 급증함으로써 일본대중문화에 적나라하게 노출
되어 있는 상태다.

지난해에 나온 어린이와 청소년용 만화의 70%가량이 일본 것을 그대로
베낀 것이라는 것도 충격적이 아닐수 없다.

그동안 일본 대중문화의 음성적 침투가 이 지경으로 만연되기까지 대응
체질을 강화하지 못한 우리의 대중문화 상품생산자들이 또 어느 정도의
시간 여유가 있어야 일본 공포증에서 헤어날수 있을지 알수가 없다.

30년이라는 짧지 않은 세월이었는데도 아무런 대처를 못해왔지 않은가.
우루과이라운드의 쌀시장개방 결정때의 재판이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게 된다.

또 한가지는 일본의 저질대중문화가 무분별하게 마구 밀어닥침으로써
우리의 대중문화가 오염 내지는 추방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감에서 나온
반대론이다.

해방뒤 미국의 대중문화 산물들이 사회전반에 홍수처럼 밀어닥쳐 왔을
때도 그와 똑같은 걱정들을 했었다. 온갖 저질의 영화와 팝송,출판물들이
들어와 우리의 전통문화를 오염시킨 부정적 영향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우리것을 말살시키지는 못했다. 오히려 우리 것을 되찾고 지켜 가려는
문화적 생명력을 더욱 북돋워 주는 활력제 역할을 했었음을 부인할수 없다.

문화란 엄밀한 의미에서 자기의 고유성만을 고집해 갈수는 없다. 인접
문화와 접촉 내지는 교류를 가지면서 자생력과 창조력을 키워 나간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한국문화 역시 중국문화의 영향을 받으면서
자란 산물이고 일본문화는 삼국시대부터 한반도문화의 영향권에서 키워진
것이었다. 일본에 대한 우리의 문화적 자부심과 우월감을 확인시켜주는
불변의 사실이다.

일제강점기와 한일국교정상화 이후에 일본의 대중문화를 비롯한 정치 기업
관료 생활문화의 패턴들이 우리의 구석구석에 배어 있다고는 하나 그것들이
우리 고유의 문화의식이나 감각까지 오염시킬수 있었던 것은 결코 아니다.
수많은 외래문화의 끈질긴 침투에도 몇천년을 굳건히 지켜온 한민족문화가
아니었던가.

우리는 이제 일본대중문화의 대거 침투현실을 직시하면서 이에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자세로 대처할 때 문화적 패배주의를 불식하고 문화교류의
상호주의 원칙을 지켜가는 문화민족의 자긍심이 되살려 질수 있을뿐만
아니라 선별적 일본대중문화의 수용도 이루어질수 있게 될 것이다.

음성적인 교류에 의한 호기심의 유발은 저질대중문화의 침투와 만연을
부채질하는 소지가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