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조시대에도 졸업식은 있었다. 세종때 6명의 선비를 절에 보내어 독서
를 하게하고 그 독서가 끝나면 술잔을 하사하여 공음케하는 의식이 있었다.
요즘으로 말하자면 졸업식으로 치서좌라 하여 나이및 생일차례로 앉아
하사배로 한잔의 술을 공음하여 임금과 신하로서, 또 동창끼리의 결속을
다졌던 것이다.

도 서울의 사학이나 태학, 성균관에서는 졸업시험인 고과가 끝나면 학생들
은 제복인 청금을 서로 찢는 파금이라는 풍습이 있었다 한다.

한편 서당에서는 개별교육을 하였으므로 개별졸업이 되어 책 한권을 뗄때
마다 책씻이(책세식)이라는 의식이 있었다. 책씻이는 학부모가 떡 술 돼지
고기등을 마련하여 훈장(스승)을 상객으로 잔치를 베푸는 것을 말한다.
졸업이란 규정된 교과나 학업을 마치는 것이기때문에 그간 쌓은 형설의
공을 차하하고 앞으로 개인의 장래와 사회발전에 공헌하게 되는 것이므로
성대한 졸업식을 거행하는 것이 보통이다.

구미에서도 마찬가지로 가령 미국 동부의 명문대학인 아이 비리그에서는
성대한 졸업식을 갖는다. 미국은 9월에 신학년이 시작되므로 5~6월에
졸업식을 거행하게 되는데 하버드대학의 경우는 총장이 일일히 졸업생에게
졸업증서를 수여하여 졸업생 한명당 초청장은 2장이 배당될 뿐이라 한다.

또 졸업식에는 저명한 정치인이 참석하여 축하를 해 주고 때로는 역사를
바꾸는 중대한 정책을 발표하기도 한다.

제2차세계대전후 황폐한 유럽의 경제를 부흥시키는데 원동력이 된 "마샬
플랜은 당시 미국 국무장관이었던 마샬장군이 47년 6월5일 하버드대학의
초청연설에서 공식으로 밝혔던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현직대통령이
대학졸업식에 참석했던 경우는 이승만대통령이 처음이고 마지막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우리 대학의 졸업식이 이번주에 피크를 이루게 된다. 지금까지 일부 대학
졸업식 풍경을 보면 주인공의 졸업생은 식장에 참석하지도 않은채 가족및
친지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꽃다발 받기에 여념이 없어 졸업식장은 가히
난장판이라 한다. 그렇게 된 원인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지난날의 대학
분쟁으로 스승과 제자사이가 균열되었고 대학 입학의 동기가 졸업증서에
있는 경우가 많았으므로 그것이 확보된 이상 굳이 졸업식에 참석할 필요를
안느끼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새삼 교유제도의 개혁을 절감케 하는 광경
이라 할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