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황을 누리고있는 국내 반도체회사들이 고부가가치제품인 비메모리분야의
개발에 본격 나서고 있다는 소식은 기술전쟁시대의 산업전략이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를 새삼스럽게 일깨워주고 있다.

반도체가 우리의 주력 수출상품임은 두말할나위 없지만 그것은 단순 기초
제품인 메모리 분야에서일뿐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비메모리 분야에서는
아직 걸음마단계에도 이르지 못하고 있음 또한 사실이다. 우리의 반도체
산업은 그간 막대한 시설투자에 힘입어 적어도 메모리분야에서는 세계시장
을 석권하다시피 하고 있다. 그러나 총800억달러에 이르는 세계 반도체시장
에서 정작 메모리분야는 전체의 5분의1에 불과하고 나머지 5분의4가 비
메모리 분야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실 우리가 메모리분야에서 일본을 따라잡을수 있었던 것도 일본이
80년대중반부터 투자의 방향을 주문형반도체(ASIC)등 특수기능을 갖는
기술위주의 비메모리분야로 바꿨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큰기술 없이도 시설
투자만 하면 벽돌찍어내듯 대량생산이 가능한 메모리분야는 일찍이 일본이
"가장 한국적인 품목"이라고 경멸섞인 판단을 내렸던 분야이기도 하다.
이미 일본에서는 메모리분야의 제품을 50%이상 만드는 반도체회사가 없을
정도라고 한다. 국내에서는 아직도 메모리제품이 80~95%에 이르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 마당에 삼성 현대 금성등 국내 반도체메이커들이 메모리분야의 한계
를 깨닫고 뒤늦게나마 비메모리 분야에서도 세계 10대기업안에 진입할
목표로 연구개발투자를 늘리고 해외에 반도체설계센터를 설립하는등 부산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보도(본지 3일자 10면)는 여간 고무적인 일이
아니다. 다만 이와 관련해서 한가지 염려되는 것은 정부의 이분야 정책이
반대방향으로 흘러온 인상이라는 점이다.

정부도 지난해 하반기 차세대반도체기술연구단을 발족시키는등 반도체산업
육성에 관심을 보이고는 있다. 그러나 프로젝트가 거의 전부 메모리쪽에
치우쳐 있다. 예를들어 256메가D램 개발프로젝트에는 수백억원을 배정
했으면서도 HDTV용 비메모리 반도체개발 프로젝트에는 고작 수억원을 배정
해 놓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는 세계반도체시장의 흐름을 보다 과학적으로 분석해 정책지원방향을
비메모리쪽으로 돌려 잡아야할 것이다. 우선 큰 방향을 잡은 뒤에는 분야별
기능별로 세분해 각 분야에 맞는 지원책을 펴는 것이 효율적이다.

업계의 비메모리분야 개발노력에 정부도 뭔가 정책면에서 기여할수 있는
역할을 찾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