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은 저축한 사람의돈을 맡아 이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연결해 주는
중개자의 역할을 하고있다. 실물부문이 순조롭게 기능하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은행의 금융중개기능이 뒷받침되어야만 한다. 이 은행업의 첫 장을
연것이 다름아닌 금세공업자였다고 말하면 놀라는 사람이 많으리라고 생각
한다. 사실 우리가 갖고 있는 전형적인 은행가의 이미지와 금을 다루는
세공업자의 이미지가 그다지 잘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옛날 서양의 이야기지만 갖고있는 금을 보관해 둘 장소가 마땅치
않은 사람은 동네의 금 세공업자에게 맡겼다고 한다. 금을 다루는 세공업자
는 금을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해 튼튼한 금고를 갖고 있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이었다. 어떤 사람이 금을 맡기면 세공업자는 보관하고 있다는 증서를
만들어 주었는데,사람들은 직접 금을 주고 받는 대신 그 증서를 주고받으면
편리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 증서는 마치 오늘날의 수표와도
같은 역할을 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금세공업자의 금고속에는 언제나 상당히 많은양의 금이 낮잠을
자고있었다. 금을 맡긴 사람들이 가끔씩 도로 찾아가기는 하지만,그들이
모두 일시에 몰려와 찾아가지는 않기 때문이었다. 그는 어차피 금고속에서
낮잠을 자고있을 금이라면 원하는 사람들에게 빌려주는게 낫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돈을 빌려 사업을 할수있는 사람에게도 좋으려니와 자신도 약간의
수수료를 받을수 있어 누이좋고 매부좋은 셈이었다.

사실 그는 돈을 꾸고자 하는 사람에게 직접 금으로 꿔줄 필요조차 없었다.
금을 보관하고 있다는 증서만 만들어 주면 실제로 금을 꿔준 것과 똑같은
효과를 낼수 있었다. 어떤 금 세공업자는 이렇게 얼마간의 수수료를
챙기려다가 호된맛을 보기도 했을것이다. 꿔준 돈이 잘 회수되지 않거나
예기치 않게 반환요구가 한꺼번에 몰려 파산에까지 이른 사람이 생겼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금 세공업자는 이 새로운 사업에서
짭짤한 이득을 챙길수 있었으며,본업인 금 세공을 통해 버는 수입보다
금을 빌려주고 받은 수수료 수입이 더 큰 경우도 있었다. 나중에는 아예
금 세공이 아니라 돈을 빌려주는 것이 자신의 본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까지 나타나게 된다. 금을 빌려주고 받는 수수료의 수입이 많으려면 우선
금을 많이 맡아두고 있어야 한다.그래서 예전에는 금을 보관해 주는 대가로
요금을 받았는데 이제는 오히려 맡기는 사람에게 약간의 사례를 해 주기
시작한다.

이 단계까지 오면 그 금 세공업자는 오늘날의 은행가와 조금도 다를것이
없다. 그 사례금은 현대의 예금전체에 대해 지급하는 이자에 해당한다고
할수있다. 그뿐아니라 예금전체에 대해 지불준비를 해두지 않고 부분적
으로만 지불준비를 하는 현대은행업의 관행도 이미 오래전부터 금 세공업자
들이 실천에 옮기고 있었던 바였다. 현대 은행업의 효시를 이룬것이 바로
금 세공업자였다는 설명을 이제는 납득할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