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년만에 부활한 지난1일의 메이데이 첫 축제가 한국노동계 전체의 화합된
자축속에서가 아니라 한국노총과 전노대(전국노동조합대표자회의)로 나뉘어
열린 사실은 한마디로 유쾌한 일이 아니다. 그런 가운데 일부의 우려처럼
양대 진영간에 어떤 충돌도 없이 무사히 지날수 있었던 것은 다행한
일이다.

메이데이에 노출된 이 양 측면은 금후 한국산업평화의 실현여부가 노.사.
정의 노력여하에 달려 있다는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고 할수 있다. 그렇게
보는 것은 이해집단간에 이견은 있을수 있으되, 각 당사자가 현재의 이해에
사로잡히기 앞서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면 충돌을 피할수 있을
뿐 아니라 공통의 광장에 합류할수 있는 통로를 찾을수 있다고 믿기 때문
이다.

논의의 출발점은 전노대가 노총을 신임하지 않고 제2의 노총결성을 운위
하게 된 배경의 천착이어야 한다. 전노대의 노총불신을 단순히 개별이익에
집착한 분파적 행위라고 매도만 할수 있는가. 아니면 전후사정을 고려할때
그들이 기존 조직을 신뢰하기 힘든 상황적 개연성이 있었는가를 당사자들
모두가 반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해방후 극심한 이데올로기의 대립속에서 우익노선을 수호하는 사명아래
발족한 노총의 짧지 않은 역사는 한마디로 정.노의 유착을 예정한 것이나
다름없다. 특히 개발독재기간중 노총의 행동폭은 제약될수 밖에 없었다.
그 속에선 숫제 어용성 시비자체가 무의미한 상황이었다. 그 길던 파행적
한국노동사의 일대 전환점은 다름아닌 87년의 6.29선언이다. 법전속에나
있던 노동3권이 유보없이 발휘되는 엄청난 변화가 이어졌다. 강했던 통제에
의 격심한 만발은 오히려 당연했다고 할수 있다.

폭발적인 노동권의 신장은 양면적 결과를 가져왔다. 근로자의 복지향상
이라는 득과 집중적인 인건비상승의 산업경쟁력 타격이라는 실이 그것이다.
그뒤 7년이 경과했다. 그 사이의 국내외 환경변화의 폭은 그 이전 40년의
그것보다 적지 않다. 더구나 UR타결이후 환경은 상전벽해의 급변을 예고하고
있다. 한마디로 국내시장과 해외시장의 통합이다.

우리는 하나의 시장에서 1대1로 싸워 이겨야 살아 남는다. 이제부터의
노사의 입지는 자명해진다. 공동목표와 공동전략이다. 노측으로는 훼절된
40여년 노총사를 노동계 전체가 함께 끌어안고 반성하여 새로운 노동의
본산으로 거듭나야 한다. 제1,제2의 노총이란 말도 안된다. 새마음 하나로
뭉쳐야 한다.

세계전체가 이미 산업재편의 진통기로 들어섰다. 선후진 불문한 공동과제
는 실업의 저지와 취업기회의 확대다. 이를 억지로 외면하고 오늘의 이익
에만 매달려선 내일이 없다. 우리의 산업경쟁력이 위축되고는 내일 일할
자리가 없어진다. 어느해 보다 노사협상이 순조로운 속에 메이데이의 부활을
맞은 한국의 노동계는 물론 사용자와 정부가 산업평화를 보는 새로운 지평의
시야를 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