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쎄 말이야. 천황도 없고, 쇼군도 없는 나라라는 거야"
"오호, 그래? 그럼 누가 나라를 다스리는데?"
"뭐 선거라는 것을 해서 권력자를 뽑느다는 거야"
"흠- 그런 나라를 세우면 우리한테 덕이 될까, 해가 될까?"
"두고봐야 알지만, 우리같은 백성들에게 덕이 될게 뭐 있겠어? 그놈이
그놈이겠지 뭐. 좀 덜 쥐어짜려나."
"맞어. 그런데 이 섬에 독립국가를 세우면 본토의 새정부가 가만히 내버려
둘까?"
"글쎄. 가만히 내버려둘 턱이 있겠어. 이 사람들은 막부의 잔당들인데.
또 한바탕 큰 전쟁이 일어날게 뻔하다구"
"아이고 맙소사- 그놈의 전쟁."
주민들은 이렇게 대체로 빈정거리는 투였다. 그러나 서양사람들은
달랐다. 여러 나라의 공사와 영사들은 이미 에노모토라는 사람에 대해서
잘 알고있는 터이라, 그가 홋카이도에 온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그가 이곳에 독립국가를 세운다는 정보도 이미 그들은 입수하고 있었다.
그 문제에 대해서는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일까 하고 회의적으로 생각하고
있었으나,어쨌든 서양을 본받아서 공화국을 세우겠다는 것이니 싫을 턱은
없었다.
재미있는 사내가 홋카이도로 왔구나 하고 미소짓고 있었다.
특히 네덜란드의 공관에서는 환영을 하는 입장이었다. 자기네 나라에
4년반동안이나 유학을 했던 사람이 자기네 정치체제를 본뜬 정부를 세울
계획이라니, 찬동을 하지 않을 까닭이 없었다.
그것이 제대로 독립국가 구실을 해나갈지 어떨지는 알수가 없지만,좌우간
지원을 아끼지 않을 생각이었다.
에노모토는 일부러 서양 여러 나라의 공관이 있는 거리를 빼놓지 않고
행진코스로 잡았고, 거류민들의 주거지역까지 스치고 지나가도록 계획을
짜놓았다.
그래서 군사행렬은 쿵작작 쿵작작. 군악소리도 경쾌하게 그들 공관 앞을
하나 하나 지나갔고, 시가지와 좀 떨어진 한적한 해변가에 조성되어 있는
거류민 주거지역까지 일부러 찾아가듯 행진을 하였다.
"웰컴! 에노모토!"
"공화국을 수립한다지요? 좋은 일이에요"
"축하해요. 정말 축하해요"
공관에서는 이층 삼층의 창문을 열고 내려다 보며 손들을 흔들어댔고
거류민들 가운데 수다스러운 여자들은 꽃다발을 만들어 들고 나와서 군사
들에게 건네주며 방글방글 웃고 야단이었다. 그렇게 서양사람들은 환영
일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