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간의 결혼이란 그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신부를 다른 재화와
마찬가지로 재산으로 취급하는 경제적 배려가 개재된 관계의 맺음이었다.
신부의 부모나 친척들이 출가하는 신부에게 지참할 재산을 주는 예로부터의
관습에서 그것은 확인된다.

웨스더 마크의 "인류혼인사"라는 책에 따르면 미개인들 사이에서는 결혼
지참금 관습이 널리 성행했고 화폐 식료품 의류 장식품 가구 가축등이
주된 지참금이었다.

인도 네팔고원의 토라족은 목걸이 팔찌 귀걸이 귀금속등과 함께 몇마리의
물소를, 시베리아의 산모예드족은 한개의 천막과 몇마리의 순록을 비롯한
썰매 의류 육류등을 신랑에게 보냈다. 또 뉴질랜드의 마리오족의 부유한
가정의 결혼에서는 노예와 토지까지 딸려보냈다.

지참재산을 자랑으로 여기는 풍토는 지난 문화정도가 비교적 높은 민족들
에게서도 토지 귀금속 화폐등 지참물을 묶어서 출가시키는 경우를 발견하게
된다. 고대 그리스나 로마에서도 지참금은 정식혼인의 증거가 되었던
것이다.

고대 로마의 정치가이자 철학자인 키케로의 재미난 일화가 한토막 있다.
누군가가 아내 티렌티아와 이혼한 키케로에게 재혼할 것이냐고 묻자 그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철학과 아내를 한꺼번에 가질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러나 그는 그 생각을 곧바로 바꾸어야만 했다. 티렌티아가
결혼할때 가져온 지참금을 반환할수 있는 유일한 길이 새 아내를 맞아
들이는 것 이외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선진화된 나라나 민족에도 부유한 집안의 경우네는 재산을 지참하는
유습이 남아있다. 부유한 집안이 아니더라도 신랑쪽에서 금전이나 재물을
선물로 보내오면 신부쪽에서도 무언가를 답례해야 하는것이 일반적인 관행이
되어 있다.

각기 다른 인격체인 남녀가 결합하여 새로운 하나의 가족공동체를 구성
한다는 입장에서 본다면 현대의 지참금은 경제적 여건이 허락하는한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질수도 있다. 문제는 신부를 다른 재산과 같은 존재로 보는
고대적 사고다. 지참재산의 품목을 지정하여 그것이 갖춰지지 않을땐 학대를
하고 심지어는 파경에까지 이르고 있다.

근년 들어 우리 사회에서 잦게 일어나고 있는 지참금 물의를 대하면서
인간성의 미개화를 재촉하는 퇴행현상이 아닐까하는 우려를 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