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병락 < 서울대경제학교수/세계경제연구소 소장 >

영국기업의 경영층문화는 혁신과 변화를 못하도록 만든다. 특히 전통에
대한 향수,책임의 애매함,형식과 절차의 중시등이 그 원인이다. 말하자면
"저 사장 폼이 풀렸으니 수출을 아무리 많이해도 말짱 헛거"라는 것이다.

그리고 기업내부의 일상용어는 "그것 아직 안되었어"이다. 높고 낮은
사람들이 가장 즐겨쓰는 말이 이러니 회사가 잘 될리가 없다. 노사관계는
"계급전쟁"에 가까울 정도록 격하다.

그리고 노사협상은 기업을 신규사업추진보다는 현상유지 쪽으로 몰고간다.
노조는 거대한 협상력이 있으므로 회사의 어떠한 규칙이든지 협상할수 있다.

가장 큰 문제는 한 기업이나 공장내에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복수노조가
있기 때문에 협상이 안된다는 점이다. 한 노조는 산으로, 다른 노조는
바다로 가야 된다고 하는 식이다.

사공이 많으면 배는 결국 산으로 가게되는 것이다. 더욱 큰 문제는 우수한
인력이 산업을 기피한다는 사실이다. 사회통념은 기업경영인을 부도덕한
장사꾼으로 천시한다.

이는 조선조때의 사.노.공.상의 직업관과 다를바 없다. 최근에는 우수
인력들이 제조업을 피하여 서비스산업으로 몰리고 있다.

정부의 처벌식 조세제도도 기업인의 기업의욕을 꺾는다. 근로자들의 장기
결근은 대단하여 전체 근로자의 13%가 결근한 적도 있었을 정도이다.

영국기업의 소유구조도 투자와 혁신을 저해한다. 미국기업의 경우와 같이
기관투자가들이 회사주식을 많이 갖고 있는데 이들은 기업의 장기성장에는
별 관심이 없고 단기이익배당만 챙기려고 한다.

그러므로 주가를 변동시키는 기업의 흡수합병도 서슴지 않고있다. 영국
에서는 기업간의 치열한 경쟁은 속된 것이고 말하자면 "밥맛을 떨어뜨리는
것"이라는 사상이 보편적이다.

그리고 전통적으로 기업의 목표는 "뛰어난 성과"보다는 "만족할 만한
성과"였다. 미국기업의 강한 이윤동기나 일본기업의 강한 시장점유율동기도
없다.

경쟁보다는 합병이 상례인데 합병은 기업의 다이나미즘의 결여와 경쟁력
상실을 초래할수밖에 없다. 의전절차나 형식에 치우치므로 행동은 뒤로
밀리며 경쟁은 가급적 피하는 것이 기업들이 바라는 바이다.

판매자나 구매자로부터 강한 압력이 없으므로 많은 영국기업은 편안함을
느끼는 가운데 서서히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

마치 산 개구리를 아주 천천히 삶으면 뜨거운줄 모르고 삼키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새로운 기업창출이 별로 없는 것도 경쟁력약화의 요인이 된다. 기업을
일으켜 부를 쌓는 것은 상류사회의 할일이 아니라는 사상이 보편적이며,
실패는 용서받지 못한다는 인식도 신규기업창설을 잘 안되게 한다.

기업은 상류사회가 아닌 사람들에 의해서 창설되는데 이들도 성공하면
기업활동을 자연적으로 멀리하게 된다. 미국정부처럼 자유방임식태도를
취하는 영국의 정부도 경쟁력상실에 큰 공헌을 했다.

영국인들은 대부분 지금도 산업의 경쟁력에는 옛날처럼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며 모든 문제는 시장제도에 일임하면 해결되는 것으로 믿고 있다.

경제정책을 주로 총수요관리나 이자율관리 중심으로 하고있다. 일본과는
달리 산업정책이 아니라 금융.재정등 거시정책 중심으로 하고있다.

경제정책의 중심은 재무부이나 산업의 국제경쟁력 향상은 재무부의 주된
정책과제가 아닌 묘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산업의 어려움과 만성적 실업은 정부의 재정부담을 크게 하고 교육이나
사회간접자본시설의 확충을 어렵게 하고 있다.

산업입지정책에 있어서도 거의 실패했다. 뿐만 아니라 보수당과 노동당의
정책이 너무나 달라 기업들은 정치불안으로 장기투자를 할수도 없었다.

말하자면 보수당은 서쪽으로, 노동당은 동쪽으로 가야된다고 하니 방향을
잡을수가 없다는 것이다. 영국의 경쟁력상실은 이런 많은 요인 때문인데,
경쟁력이 한번 기울어지면 되돌리기 힘들다는 교훈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