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비아반도의 서남쪽 끝에 위치하고 있는 소국 예멘이 우리 관심을
끄는 이유는 남북예멘이 1990년5월에 평화통일을 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통일된지 불과 3년9개월만에 구남북예멘군이 충돌하여 현재
내전상태에 있다.

남북예멘은 그역사적 배경이 아주 다르다. 북예멘은 18년에 오스만
터기에서 독립하였고 남예멘은 67년에 영국지배에서 벗어나 독립하였다.

그러나 북예멘은 62년에 왕국에서 친서방공화제로 체제가 바뀐 반면
남예멘은 마르크스 레닌주의를 표방하는 남예멘인민공화국으로 발족하여
78년에 친소파가 실권을 장악하였다.

남북예멘이 통합하게 된 것은 남예멘은 냉전종결과 소련붕괴라는 국제
정세 격변의 영향을 받았고 북예멘은 걸프전쟁당시 이라크를 지지하여
품팔이로 나가있던 노동자 약100만명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추방되어
국가경제가 파탄직전에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89년에 통일에 관한 헌법초안이 조인되었고 90년5월에 남북이 통합된뒤
91년5월에 통일헌법이 국민투표에서 승인되었다.

북부출신 지도자인 알리 압둘라 살레가 대통령이 되었고 남부출신지도자
알리 살렘 알 베이드가 부통령에 취임하였으나 작년 4월에 실시된
총선에서 북예멘의 인구가 남예멘의 인구보다 3배나 많기때문에
살레대통령의 총국민의회당(GPC)이 121석을 얻은 반면에 베이드부통령의
예멘사회당(YSP)은 겨우 56석을 차지하는데 그쳤다.

베이드부통령은 3당연립정부의 각종회의에 참석하기를 거부하다 93년
8월에는 아예 수도 사나를 떠나 전남 예멘 수도였던 아덴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이번 내전의 직접적인 계기는 수도 사나부근에 주둔하고 있던 남북
예멘군이 충돌했던 것. 남북예멘은 통일은 되었지만 북측의 정규군 38만
(예비군10만)과 남측의 정규군 27만명(예비군4만명)이 그대로 있었고
군의 지휘계통도 각각 존속하였었다.

현재 예멘의 산유량은 일산 34만베럴이고 유전의 대부분이 북쪽에 있지만
유망한 유전이 남북경계지대에 있기때문에 석유메이저들이 각출전을
벌리고 있다 한다.

장래의 일이지만 개발이 되면 일산 100만~200만배럴의 원유생산도 가능할
것이라 한다.

한편 인접한 사우디아라비아는 예멘의 민주화가 왕정에 미치는 영향과
인구 1,300만명은 외국인을 제외한 사우디 인구에 필적하기 때문에
예멘의 재분열을 내심으로 환영할지 모른다는 관측이다.

남의 일 같지않은 사태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