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부처들이 정책수립과제를 무더기로 "용역사업화"하고있다. "객관적"
입장의 논리를 들어보겠다는 게 본래의 취지이지만 요즘에는 민감하거나
골치아픈 사안들의 대부분이 "연구용역"으로 포장돼 정책화하고 있다.

8일 관계당국과 연구기관에 따르면 경제기획원 재무부 상공자원부 노동부
환경처등 경제부처들이 산하연구기관이나 민간연구소에 올들어서만 평균
5~10건 정도씩 정책검토과제를 연구토록 의뢰해 놓고 있다. 이는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평균 30%이상 늘어난 것이다.

이같이 용역이 급증하면서 유사한 과제를 중복용역해 예산을 낭비하는가
하면 용역비용을 관련업계가 부담토록해 특정이해집단의 논리를 대변하는
결과를 내놓는등의 부작용도 빚어지고 있다.

특히 이해관계가 첨예한 사안들의 경우 연구용역이 마치 "통과의례화"돼
관료집단의 책임회피 수단으로 악용되는 경향마저 나타나고 있다.

중복용역의 대표적인 예는 경제기획원이 지난해 생산기술연구원에 의뢰한
"3D작업장의 작업환경및 공장자동화연구".

이 주제는 이미 상공자원부가 여러차례 연구를 시킨 식상한 과제다.
중소기업정책의 경우 상공자원부가 중소기업개편방향, 중소기업관련법
개정방향, 중소기업고유업종 경쟁력제고방안등을 세분해 연구시켜 놓고
있는 상황에서 경제기획원이 "중소기업의 기술력향상에 관한 연구"를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맡기기도 했다.

결과에 책임이 수반되는 사안은 의례히 용역에 넘겨진다. 예컨대
상공자원부가 자동차공업협회 자금 3억원으로 산업연구원(KIET)에 의뢰한
"승용차사업 신규허용 타당성조사"라든지 KIET에 의뢰해놓은 "항공산업
발전방향" "조선신증설방안"등을 들수 있다.

이중 삼성의 자동차사업에 대해선 여러개의 대안별로 장단점을 열거한
"양시론"이 제시돼 논란만 가중시켰다.

나머지는 항공우주협회와 조선공업협회등 이해당사자의 자금으로 연구가
진행돼 정책판단을 위한 자료가치가 있을지도 의문시되고 있다.

재무부가 "금융전업군 육성방향"을 시중은행들이 출자로 돼있는
금융연구원에 맡긴 것이나 민영화대상 공기업의 경영진단을 해당기업의
부담으로 용역의뢰한 것 역시 연구결과의 투명성에 하자가 우려되는
사례다.

특히 우리나라의 연구기관들은 정부예산을 지원받기 때문에 "관변화"돼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용역발주처의 의중을 헤아려 결론을 내는수가
허다해 정책합리화의 절차로 이용되는 폐해가 있다는 인식이다.

경제계에선 이같은 용역만능풍조에 대해 "관가에 만연한 복지부동현상의
한단면으로 볼수 있다"며 "정책과 연구는 엄격히 구분돼야 하며 공직자의
소신이 더더욱 요망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박영균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