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신증권은 출범 당시 충무로 2가 삼윤빌딩과 그 옆의 신도빌딩을 본점
사무실로 사용했다. 그러나 회사 규모가 비약적으로 커지는 상황이어서
그 사무실만으로는 늘어나는 업무량과 직원들을 효과적으로 수용할
수가 없었다.

그뿐 아니라 증권시장에 상장된 대형 회사로서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기
위해서도 새로운 사옥 마련이 절실했다. 그러던 차에 옛 국립극장이
공매된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하늘이 내려주는 또 하나의 기회라고 생각하였다.
당시 명동은 금융의 중심지였기 때문에 국립극장은 금융회사 사옥으로
가장 이상적인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당시 대신증권의 힘만으로는 번듯한 사옥을 장만하기란 벅찬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동안 잇따른 증자와 경영체제 정비에 막대한
자금이 투입되었기 때문이었다.

한편 대한투자금융도 사옥이 비좁아 상당한 애로를 겪고 있었다. 그래서
대한투자금융 역시 널찍한 새 사무실을 마련해야 할 형편이었다.

이렇게 볼때 대신증권 힘만으로는 벅차다 할지라도 대한투자금융과
공동으로 출자하여 새 사옥을 마련한다면 별 무리가 없을듯 했다.

부동산 업자들이나 국유 재산 처분에 밝은 사람들은 입찰에 응해봤자
소용 없다면서 극구 만류하였다. 그러나 나는 어떠한 경우에라도 입찰에
응할 것을 결심하고 긴급 이사회를 소집하고 그 자리에서 입찰에 참여하기
위한 전권을 위임 받았다.

그 이튿날이었다. 나는 상무이사와 기획실장을 대동하고 입찰 장소로
나갔다. 입찰장소는 중앙청안의 총무처 연금국이었다.

경쟁자들 중에는 손가락안에 꼽히는 대재벌도 적지 않았다. 입찰이 시작
되었을때, 나는 이번 입찰에서 반드시 낙찰을 받아내고야 말겠다는 각오로
21억1천1백만원을 써 넣었다.

그러자 나를 수행했던 상무와 기획실장의 눈이 휘둥그래지면서 재고할
것을 심각하게 건의해 왔다. 금액이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대로 써서 맨 나중에 제출하였다. 입찰에 응할때 다른
경쟁자들은 그 건물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새 건물을 짓는다는 생각에
골몰해 있었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달랐다. 나는 그 건물 내부를 사무실용으로 개조하여
사용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경쟁자들과 나
사이에는 원가 개념 측면에서 큰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입찰 결과는 우리의 승리로 끝이 났다. 다음날 일간 신문들은 국립극장
공매 사실을 대서 특필했으며 국립극장의 매각이 우리에게 낙찰되었다는
소식에 경쟁자들은 물론, 재계 전체가 깜짝 놀라는 것이었다.

이는 가히 한편의 멋진 드라마였으며,나의 작전이 주효한 명승부전이라고
말할수 밖에 없었다. 일주일쯤 지나자 입찰에 참여했던 어느 대기업으로
부터 값을 두배로 계산해줄테니 되팔지 않겠느냐는 제의가 들어오기도
했다. 물론 값을 두배로 주겠다는 그 제의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어쨌든 이러한 우여 곡절 끝에 대신증권과 대한투자금융은 1975년11월
17일 총무처와 매매 계약을 체결하고 극장 건물을 사무실 용도로
개조하기 위한 공사를 발주하였다.

새 사옥이 사무실용으로 말끔히 새 단장을 마치자 대신증권과
대한투자금융은 이듬해 9월16일 이 건물로 이전하였다.

이로써 나의 소망이었던 새 사옥 마련이 실현되었고 대신증권 명동사옥은
이후 "증권투자자들의 명동사랑방" "주식투자자들의 베이스캠프"라 불리며
증권시장의 최중심 역할을 담당해 나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