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왠지 가슴이 시원해지는 느낌이 들었어요. 평소 하고 싶었지만 보수적
이라는 말이 싫어서 못했던 말의 응어리들이 다 풀리는것 같은데요"

지난 5일 대학로 인간소극장에서 막을 올린 "장 아누이의 반바지"의 공연이
끝난후 한 남자관객이 던진 고백이다.

시종 웃음으로 계속된 이날 공연은 신랄한 현실풍자, 어느쪽에도 손을
들어주지 않는 철저한 객관성 그리고 가슴을 시원게 씻어내리는 통쾌한
언어로 가득찬 무대였다.

장 아누이의 반바지는 1970년대 프랑스를 매경으로 현대 사회에 만연한
여성해방 운동과 실추된 남성의 권위를 희화한 작품.

권력을 잡은 여성들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면서 여성 해방운동을
풍자하고 있지만 단순한 반페미니즘 연극은 아니다.

거대한 역사 그러나 좁은 한사람의 삶, 그보다 더 조잡하고 하찮은 일상속
에 갇혀 사는 사람들의 꼴이 얼마나 우습고 도토리 키재기식의 의미없는
짓인지를 따끔한 웃음으로 전달하고 있다.

여성이 모든 권력을 장악한 사회에서 하녀를 농락했다는 혐의로 붙잡힌
레옹을 두고 재판이 벌어진다.

어떻게든 레옹에게 불리한 판결이 내려지도록 노력하는 아내 아다와
증인들에게서 무엇인가 야한 이야기를 기대하는 세명의 여재판관들,
여성주의 시대가 도래하자마자 성정환 수술을 받아 여성이된 레옹의 친구
이자 변호사인 르벨뤽.

이들은 모두 드러내고 싶지않은 우리의 천박한 심성, 질투, 우스꽝스런
모습을 대변하고 있다.

이속에서 여자라면 "여자는 어쩔수 없어"라는 자조적인 한탄을, 남자라면
"여자가 그럼 그렇지"라는 의기양양한 웃음을 몰래 지을수도 있다.

그러나 하녀의 친절과 인정에 반해 하녀를 사랑하게 됐다고 고백하며
유일하게 여성중심의 사회에 당당히 대항하는 레옹은 선인인가.

작가 장 아누이와 극의 연출자는 "모두 그렇고그런거지 누가 옳고
그른가"라는 현실인정으로 극을 마무리한다.

새로운 하녀와 새결혼을 한후 스위스로 도망간 레옹 역시 자신의 이익이
걸린 문제에서는 당당하지 못했고 자기를 중심으로 또다른 구태와 억압을
창출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장 아누이의 반바지"는 7월31일까지 대학로 인간소극장에서 공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