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왕이 황제를 자칭하다니, 건방지기 짝이 없군. 참으로 가소로운
일이로다. 그런 가소로운 것들이 우리와 국교를 회복하고 싶다고? 흥!
흐흥!"

콧방귀를 두 번이나 뀌어 버렸다.

흥선대원군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듯이 묵살해 버린 것이었다.
동래부사가 문의한 일본 국서의 접수 여부에 대해서는 한마디 입밖에도
내지 않았다.

흥선대원군의 콧김 센 콧방귀만으로도 그 속마음을 헤아리고 남는 터이라,
예조에서는 그 동래부사의 보고서를 보류함에 넣어 버렸다. 혹시 언제
흥선대원군의 입에서 그 건에 대하여 말이 나올지도 모르니 예조로서는
우선 보류해 두는 수밖에 없었다.

일본에 대하여 흥선대원군은 평소에 속으로 몹시 못마땅하게 여겨 오고
있었다. 막부 말기에 이르러 쇄국 정책에서 개국 정책으로 돌아서서 서양
세력을 받아들이는 것을 보고 경멸감과 함께 경계심이 일기도 했던 것이다.

그들의 압력에 못이겨 닫고있던 나라의 빗장을 열어주는 것은 경멸하기에
족하다 싶었고, 서양 세력과 손을 잡고서 나중에는 조선족을 넘보게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운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 흥선대원군인지라, 일본이 황 자를 함부로 써가며 국교 회복을
꾀하는 국서를 보내왔다는 사실을 알고 콧방귀를 뀌며 묵살해 버린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이듬해 봄, 동래부사 정현덕은 국서에 대한 협의차 두 번째로 찾아온
사자인 오시마도모스케에게 직권으로 협의 불가라는 통보를 해버렸다.

그때까지 한양에서 아무런 하명이 없었던 터이라 틀림없이 황자를 함부로
사용한 오만불손함 때문에 묵살했으리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왜 협의를 못하겠다는 겁니까? 금년 봄에 협의를 하자고 해서 이렇게
찾아왔는데, 이럴 수가 있나요?" 오시마가 항의를 하듯 물었다.

"나로서는 어쩔 수가 없는 일이오. 한양의 조정에서 그런 하명이 있었으니
말이오" 정현덕은 시치미를 뚝 떼고 대답했다.

"조정에서는 왜 협의를 하지 말라는 거죠?" "격식 때문인것 같소. 국서의
글귀에 황 자를 사용하고 있고, 또 인장도 옛것과 다르지 않소. 그러니
그점을 수정해서 다시 제출해 주었으면 좋겠소"

수정이라니 말도 되지 않는다고, 쇼군에서 천황으로 정권이 옮겨졌으니
황 자를 쓰는 것은 당연하며, 인장도 다를수 밖에 없지 않느냐고,오시마는
정식으로 항의를 하고서 돌아갔다.

그런 사실을 보고받은 유신정부의 수뇌들은 분노를 터뜨렸다. 특히
사이고는 노발대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