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이자카야(거주옥)라고 하면 샐러리맨들이 퇴근길에 술한잔을
기울이면서 하루의 스트레스를 푸는 곳이다. 한국으로 치자면 선술집정도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이자카야들이 최근 커다란 혼미에 빠져 있다. 술값을 인상할
것이냐 말것이냐 하는 문제 때문이다.

이자카야로서는 원가를 생각하면 술값을 올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현실적
입장이다. 주세법개정으로 지난달부터 술의 반입원가가 올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 판매가를 올리는 곳은 그렇게 많지 않다.

이자카야들이 원가상승분을 선뜻 판매가인상으로 연결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은 유통업계에서 거세게 확산되고 있는 저가경쟁 때문이다.

이자카야를 가장 괴롭히고 있는 것은 판매의 주력제품인 맥주. 맥주의
경우는 주세가 1리터당 14엔씩 올랐다.

따라서 판매가도 같은 폭으로 올리는 것이 자연스런 흐름이지만 시중의
실제유통가격이 주세인상과는 관계없이 오히려 큰폭의 하락추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메이커들이 책정하는 맥주의 희망소비자가격은 주세인상분을 반영, 지난달
부터 소폭 인상돼 표시돼 있다. 지난4월까지만해도 맥주의 소매가격은 이
희망가격근처를 유지했으나 주세인상실시시점을 앞두고 오히려 큰폭으로
떨어졌다.

3백50ml 캔제품의 경우 희망소비자가격은 2백25엔. 4월보다 5엔이 높아진
것이다. 그러나 현재 이제품의 실제유통가격은 이보다 10%가량이나 낮은
2백엔 안팎에 머물러 있다.

이토요카도 쟈스코등에서는 캔당 2백3엔에, 세이유는 1백98엔에 각각 판매
하고 있다.

세븐일레븐 세이유 다이에등이 기획해 판매하고 있는 6캔들이 팩제품을 살
경우는 이보다 더욱 싸진다. 팩제품의 가격은 1천1백40엔. 1캔당 1백90엔에
불과하다.

주세인상전보다 오히려 최대 30엔(13.6%)이나 하락한 것이다.

맥주의 가격인하경쟁에 불을 지른 것은 박리다매정책의 최일선을 달리고
있는 유통업계의 큰손 다이에. 다이에는 지난4월14일 당시 2백19엔에 판매
하던 캔제품가격을 2백3엔으로 전격 끌어내렸다.

경쟁수퍼업체들도 잇달아 뒤를 좇아 가게 되는 것은 불문가지의 사실.
그러나 대폭적인 가격인하로 소비자들이 꼬여들어 불황에도 불구하고
매상고는 급팽창세를 보이고 있다.

다이에를 비롯 세이유 쟈스코 이토요카도등이 모두 가격인하전에 비해
2배이상씩의 맥주판매실적을 올리고 있다.

앉아서 손님을 빼앗길 수만은 없게 된 백화점들도 최근엔 인하대열에
동참, 대형수퍼업계의 수준까지 가격을 끌어내렸다. 메이커로부터의 공급
가격은 올랐는데 판매가격은 하락하는 기현상이 유통업체전체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맥주뿐만이 아니다. 양주나 포도주등도 가격인하경쟁이 격심하기는
마찬가지다. 조니 워커블랙의 경우 일본에서의 희망소비자가격은 4천엔.

그러나 대형수퍼나 할인매장에서의 실제판매가격은 2천8백엔대로 희망가격
을 30%가량이나 밑돈다. 2천5백엔으로 희망가격이 설정돼 있는 조니워커
레드도 점포만 잘 고르면 1천8백엔대에서도 매입이 가능하다.

시바스 리걸의 경우는 이보다 훨씬 할인폭이 커 희망가격 6천5백엔의
12년짜리가 절반에도 미달하는 3천엔 이하에서 거래되고 있다.

1천엔안팎이 주류를 이루는 포도주(7백50ml 기준)시장에서도 수입품이긴
하지만 2백90엔짜리까지 등장했다.

이처럼 가격인하추세가 확산되는 속에서 값을 올린다는 것은 소비자들로
부터 욕을 먹기 십상이다. 불황의 여파로 부진에 시달리고 있는 이자카야
로서는 손님을 더욱 줄게 만들 행동을 실행에 옮기긴 정말 쉽지 않은 노릇인
것이다.

말하자면 이자카야는 대형유통업체들간의 치열한 힘겨루기속에서 불쌍한
희생양이 되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