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항공산업은 그 역사에 비해 산업발전수준이 낮은편이다.

지난77년 대한항공이 500MD를 생산하기 시작한 이후 15년이 지났으나 항공
산업수준은 아직까지 면허생산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내항공업계는 70년대후반부터 지금까지 4백50여대의 군용항공기를 면허
생산했다.

500MD헬기 3백여대와 UH-60블랙호크헬기 80여대를 조립생산했으며
F-5전투기(제공호) 70여대를 제작했다.

오는 99년이면 F-16전투기 1백20대를 포함, 면허생산항공기대수가 6백여대
에 이르게 된다.

항공산업의 발전단계는 일반적으로 면허생산을 거쳐 해외업체와의 공동
개발, 독자개발등의 순으로 진행된다.

15년동안 5백여대에 가까운 항공기를 면허생산했다면 적어도 해외업체와
대등한 수준에서 항공기를 공동개발할수 있는 능력은 확보돼야 한다.

그러나 국내항공업계는 15년동안 면허생산을 했으면서도 항공기개발기술을
얻는데는 실패했다.

항공기디자인및 설계, 항공전자, 소재분야등 핵심기술이 선진국에 비해
매우 낙후돼 있다.

국내업체들이 확보한 항공기술은 부품생산 또는 일부조립기술에 불과한
실정이다.

정부는 지난해 중형항공기사업을 통해 항공기설계기술을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한중항공기합작사업을 통해 면허생산단계에서 공동개발단계로 발전하려는
것이다.

군용기 면허생산사업은 해외직접구매보다 비용이 20~30%정도 더 높다.

항공산업육성의 명분을 내세워 정상가격보다 높은 대가를 국민의 세금으로
부담했던 것이다.

그러나 면허생산을 통해 육성돼야할 항공산업은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다.

국방부가 최근 면허생산방식으로 조달하려던 경전투헬기사업에 제동을
걸고 나선것도 "면허생산을 통한 항공산업육성"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됐다.

5백여대를 면허생산했으면서도 항공기설계기술을 확보하지 못한데에는
업계의 책임 또한 적지 않다.

500MD헬기와 UH-60블랙호크헬기, F-5전투기등 4백50여대를 면허생산한
대한항공은 지난해 국정감사과정에서 국회의원들로부터 항공산업투자가
부진하다며 호되게 질책당하는등 곤욕을 치렀다.

그러나 면허생산을 통한 항공산업육성정책의 실패를 업계책임으로만
돌리는데에는 문제가 있다.

정부가 장기적인 계획을 갖고 사업을 추진했더라면 항공산업을 보다
효과적으로 육성할수 있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정부는 그동안 장기적인 계획없이 군용기사업을 추진해 왔다.

70년대말부터 10여년간 3백여대를 생산한 500MD헬기사업의 경우 전체수급
계획이 한번도 제시되지 않았다.

500MD사업은 76년부터 78년까지 1백여대 생산된 이후 80~81년에 50여대,
84~85년 30여대등 4~5차례 나눠 생산됐다.

"사업이 끝난줄 알고 라인을 철거한 이후에 다시 생산하라는 지시가
내려온 것이 여러번이었다"는게 대한항공관계자의 말이다.

촉박한 납품일정을 지키려하다보니 부품국산화가 제대로 될리 없었다는
얘기다.

군용기사업이 1회성사업으로 끝나는 것도 문제였다. 80년대초 진행됐던
F-5전투기 면허생산사업의 경우 대한항공은 단종된 기종을 전세계에서
마지막으로 생산했다.

면허생산 경제규모에도 못미치는 70여대를 생산하는데 그쳤으며 이후
수출도 불가능했다.

대한항공은 국민세금이 투입된 F-5전투기 생산라인을 폐기처분할수밖에
없었다.

이같은 상황에서 과감한 투자는 결국 낭비일 뿐이기 때문이었다.

면허생산사업예산을 해외직접구매가격의 1백30%이내로 제한하고 있는 것도
항공산업발전에 장애요인이 돼왔다.

국방부는 80년대초 국내산업수준을 이유로 "국내업체들이 해외구매가격의
30%이상을 국산화할수 있는 능력이 없다"며 면허생산예산을 구매가격의 1백
30%이내로 제한해 왔다.

이같은 원칙은 국내산업수준이 급격히 향상된 오늘날까지도 적용되고 있다.

사업물량과 기간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해외구매가격의 1백30%예산
으로는 핵심부품국산화와 핵심기술습득은 생각조차 할수 없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말하고 있다.

항공업체간 경쟁체제도 항공산업육성에 큰 장애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항공업체수가 80년대초 1개업체에서 90년 3개업체로 늘어남에 따라 사업
물량이 쪼개져 기술축적이 분산되는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했기 때문이다.

항공업체 입장에서는 후속물량에 대한 확실한 보장이 없어 과감한 투자에
어려움을 겪게 됐다.

군용기생산업체는 80년대초 "대한항공-기체, 삼성항공-엔진"으로 전문화돼
있었다.

그러나 삼성항공이 86년 KFP사업 주계약업체로 선정되면서 이같은 원칙은
깨졌다.

국방부는 90년7월 대한항공 삼성항공에 이어 대우중공업을 군용기전문업체
로 지정, 7대군용기사업을 배분했다.

삼성항공은 KFP사업과 KTX-2(고등훈련기개발), KPU(팬텀성능개량사업.
백지화)를 맡았으며 대한항공은 UH-60블랙호크사업과 F-5전투기성능개량사업
(백지화)을, 대우중공업은 KTX-1(초등훈련기개발)과 KLH(경전투헬기사업.
미계약)를 각각 따냈다.

상공자원부는 3개업체가 군용기사업을 맡고 있는 것이 항공산업육성에
효율적이지 못하다고 판단, 지난해부터 항공산업전문계열화를 추진해 왔다.

"21세기 항공산업발전방향" 보고서를 통해 민관컨소시엄을 제시했던 산업
연구원에서도 항공업체를 단일화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항공업계는 정부의 항공산업전문계열화방안에 대해 서로다른 의견을
보이고 있다.

삼성항공은 주관회사선정을 통해 1개업체를 항공전문업체로 육성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대한항공 대우중공업은 민관컨소시엄 또는 동등지분의
민간컨소시엄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이들업체의 의견도 회사형태(단일회사 또는 컨소시엄)에서만 다를뿐
항공업체를 단일화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군용기사업을 통한 항공산업육성정책이 지금까지 실효를 거두지 못했던
직접적인 이유는 불규칙한 생산주문, 면허생산예산의 제한, 업체경쟁을
통한 군용기사업배분등이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항공산업육성을 책임지는 부처와 군용기사업
을 추진하는 부처가 다르다는 점이다.

항공산업육성에 대한 책임은 상공자원부에 있는 반면 군용기사업은 국방부
에서 이루어진다.

국방부는 현재 무기선정뿐만 아니라 획득방법까지도 결정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필요한 무기를 해외에서 직접 구매할 것인지, 아니면 국내에서 면허생산할
것인지, 독자개발을 추진할 것인지를 직접 결정하게 된다.

반면 항공산업육성책임을 맡고있는 상공자원부는 국방부에서 면허생산 또는
국내개발방식을 통해 무기를 구매할 계획을 확정지은 이후 계약업체를 선정
하는 역할만 맡아왔다.

국가방위를 맡고있는 국방부는 항공산업육성측면보다는 전력화시기를 더욱
중요시한다.

상공자원부는 수요대수가 많으면 전력화시기충족보다는 기술도입생산 또는
개발생산에 더 많은 신경을 쓰게될 것이다.

상공자원부의 산업육성정책과 국방부의 전력화요구시기를 통합조정할수
있는 총괄기구가 없는한 군용기사업을 통한 항공산업육성정책은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