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이 오는 7월25일 평양에서 정상회담을 열기로 합의한 것은 반세기
동안 지속되어온 대결국면을 대화와 협력국면으로 진입시킬수 있는 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한반도분단사에 엄청난 대사건임이 분명하다.

남북간의 합의라는 것이 휴지조각처럼 구겨지기 쉽다는 것쯤은 경험으로
입증된 사실이지만 이번만큼은 양측 정상의 만나겠다는 의지가 어느때보다
강한데다 주변여건도 과거와는 달라 회담의 계속성에 큰 기대를 갖게 한다.

그러나 우리는 정상회담이 남북간의 오랜 적대관계와 불신의 벽을 단번에
허물어 주리라고는 기대하지 않는다. 그같은 판단은 예비접촉에서 북측이
보여준 태도가 근본적으로는 전과 다를게 없다는 사실에서도 충분한 근거를
갖는다.

우리는 먼저 북측이 제2차 정상회담의 날짜와 장소를 잡는데 그토록
신경을 쓴 저의에 주목하고자 한다. 1차회담을 평양에서 했으면 2차회담은
서울에서 하는것이 상식이다.

그같은 상호주의원칙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라 지난 20여년간의 남북
대화사에서 철저하게 지켜져 왔다. 그런데도 북측은 유독 이 문제를 끝까지
물고 늘어져 남측의 양보를 받아내고 말았다.

뿐만아니라 북측은 회담분위기와 관련해 남측에 여러가지 트집을 잡을수
있는 근거를 합의서에 고집스럽게 집어넣었다.

김영삼대통령의 평양행만 따먹고 내키지 않는 김일성주석의 서울행은
그만둘 구실을 미리 복선으로 깔아 놓았다고 볼수도 있을 것이다.

정상회담의 호칭조차도 저들은 "최고위급회담"이라고 부른다. 한반도에
정상은 김일성 하나만으로 족하다는 논리다.

상호 체제인정이라는 대화의 기본바탕조차도 부인하고 있는 것이다.

그다음 이번 정상회담합의는 북한의 대미협상과정에서 북측이 즐겨 써먹는
수법인 "벼랑끝 흥정"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된다.

과거나 지금이나 북한의 관심은 오직 대미직접협상임을 감안할때 북한은
남북정상회담을 대미관계개선의 종속변수로 삼고 있는듯 하다.

즉 북.미고위급회담의 결과를 보아 언제든지 판을 깨버릴수도 있다는
입장일수도 있다.

정상회담 달성사를 역사적인 것으로 평가하면서도 우리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남북관계에서의 크고 작은 합의는 오직 실천만이 중요할 뿐 합의자체는
아무 의미도 없다는 점이다.

정부는 정상회담성사를 놓고 결코 들떠서는 안되며 국민 역시 과잉기대는
금물이다. 정상회담은 또 하나의 새로운 출발일 뿐이다.

회담성사를 위한 우리정부의 대폭적인 양보가 "한건주의"의 유혹에 못이긴
성급한 행동으로 비쳐진다면 회담성공에 필수적인 총력결집은 허사가 되고
말것이다.

정부의 치밀한 준비와 국민의 조용한 성원이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