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한담] '정보하이웨이' 민/관 공동추진 바람직..성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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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의 성기수박사(62). 사람들은 그를 우리나라
"컴퓨터의 대부", "전산계의 태두", "정보화의 전도사" 등으로 부르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한 직장에서 28년간 한우물(컴퓨터및 시스템)을 깊고 넓게 판 그는 불모의
컴퓨터싹을 키워왔고 무수한 연구개발을 통해 수천명의 고급인력을 양성한
천재과학자다.
성박사는 경북 성주군 초전면 대장동 작은 시골마을에서 6남매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성주농업5학년때 6.25가 나고 부친이 비명횡사하는 불행을 당한다.
상경해 미군부대 하우스보이 국수공장직공등을 하다가 귀향, 닭 돼지를
키우고 수박농사를 짓기도 했다.
53년 대입검정고시에 합격, 서울대공대화공과에 들어가고 조선항공공학과로
전과해 졸업한다.
공군장교시절 "로케트탄도의 근사공식"이란 논문이 미학술지에 실리고
이것이 계기가 돼 하버드대에 유학, 2년만에 석.박사학위를 받는다.
동대학 3백년역사상 처음있는 일이다.
대덕단지 시스템공학연구소에서 의구 성기수박사를 만났다.
-대학(서울대및 하버드대)서는 항공분야를 하셨는데 컴퓨터와의 인연은
언제 맺으셨나요.
<>성박사=우연찮게 이루어졌어요. 박사학위를 받은 후 내 학위논문을
다른사람들이 공학적으로 쉽게 응용할수 있도록 수치로 계산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전동탁상계산기를 며칠 쓰고 있는데 미국인 동료가 옆방에 더 좋은 기계가
있다고 해요. 가보니 하늘색 옷장같은 것들이 넓은방에 가득한데 그게 바로
IBM7090컴퓨터였습니다.
사용법을 익히고 나자 계산속도는 물론이고 방대한 수치와 계산과정까지
기억하는 능력에 경탄했습니다.
-항공분야는 당시 미.소의 인공위성개발경쟁으로 일자리도 많고 촉망받는
분야였을텐데.
<>성박사=물론이죠. 하지만 나는 그때 군인신분으로 유학을 갔고 그곳에서
5.16을 맞이해 어렵사리 2년만에 학위를 끝내고 귀국해야 하는 입장
이었습니다.
내가 공부한 것이 미국서는 인기가 있었으나 먹고 사는게 시급했던 한국서
는 무용지물이나 다를바가 없었어요.
-그당시 한국서 먹고 사는데 도움이 안되기는 컴퓨터도 마찬가지
아니었습니까.
<>성박사=그렇게도 생각할수 있겠으나 난 그때 컴퓨터에 큰 충격을
받았어요. 특히 기억력을 갖고 있다는데에 굉장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런게 있으면 사람들이 일을 더 능률적으로 할수 있겠다고 확신했습니다.
학문연구는 물론 은행 정부 기업등서 일을 더잘 할수 있을 것으로 생각
했어요.
-그때 이미 컴퓨터의 앞날을 꿰뚫어본것 같습니다.
<>성박사=결과적으론 그런 셈이군요.
-귀국해 바로 컴퓨터분야서 일을 하셨습니까.
<>성박사=공사교관으로 5년간 있다가 KIST에 전자계산실이 생겨(67년)
책임자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교관시절에 서울대 공대 문리대 상대
행정대학원등에서 시간강사로 OR등을 강의했습니다.
-KIST전산실장으로 갈때 박사께서는 세갈래 갈림길에 섰던 것으로
들었습니다.
<>성박사=하버드대 브린슨교수의 추천으로 캐나다의 웨스턴온타리오대
수학과교수로 가기로 결정돼 출국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그때 한국경제협회 일로 같이 일한 남덕우교수(전경제기획원장관)로부터
서강대경제학과교수 오퍼가 있었지요.
또 KIST소장인 최형섭박사(전과기처장관)가 컴퓨터책임자를 물색중이라는
얘기를 듣고 김정열공참총장(초대)이 저를 추천했습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때 최소장 김총장 송인상회장(당시 한국경제개발
협회장 전재무장관) 세사람사이에 모종의 합의가 이뤄져 나의 출국이 급기야
저지(?)됐고 나 또한 캐나다행을 강하게 고집하지 않았습니다.
-컴퓨터와는 뭔가 인연이 센 모양입니다.
<>성박사=그런 생각이 들 때도 있기는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대학에
다닌다면 아마 수학이나 물리학을 할 겁니다.
사실은 수학에 큰 매력을 느꼈습니다. 하버드에선 물리학에 빠지기도
했어요. 큰 아이(진원씨 연세대물리학과졸) 둘째(명희씨 서울대수학과졸)
셋째(진일씨 경원대전산과졸)가 모두 제가하고 싶었던 것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유전인가요. 아니면 진로를 그쪽으로 유도한 것인가요.
<>성박사=분위기에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해요.
-분위기란 어떤 의미인가요.
<>성박사=집에오고 만나는 사람들 동료 후배들을 보고 감수성이 예민한
어린시절 애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길을 고른겁니다.
난 집에서 애들과 대학얘기 안하고 살려고 했고 또 그랬습니다.
-KIST전산실을 키워 시스템공학연구소로 발전시켰고 92년까지 소장으로
있으면서 수많은 성과를 냈습니다.
한글입출력시스템 고입및 대입고사채점 증권전산화시스템 정부예산업무
전산화 전화요금전산화 88서울올림픽전산 슈퍼컴도입 컴퓨터공개프로그램
강좌등 한숨에 나열하기도 어렵습니다.
한국 최초의 데이터통신도 공로로 꼽히고 있는데.
<>성박사=1970년 홍릉의 KIST와 경제기획원간에 컴퓨터를 서로 연결해
썼으니까 데이터통신인 셈입니다. 이때의 경험과 인력이 현재 데이콤설립에
도움이 됐어요.
-서울 덕수상고에 터미널을 연결해 학생들에게 코볼 포트란등을 공부시킨
것도 당시로는 아주 혁신적인 일로 평가되고 있지요.
<>성박사=정부예산전산화사업에 KIST에서 안문석씨(현 고려대교수)가 참여
했습니다. 하루는 내게 와서 대통령에게 전산화의 중요성을 브리핑하지
않겠느냐고 해요.
강경식씨(당시기획원예산총괄과장 현국회의원)가 기회를 만들겠다는
겁니다. 그래서 대통령을 뵐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전산화의 우선순위 상고
교육의 중요성등을 건의했습니다.
이후 대통령이 관심을 갖자 장관들도 전산화에 신경을 쓰기 시작합디다.
그래서 입시자동채점 상고컴퓨터교육 전화요금전산화등이 이어진 것입니다.
-88올림픽때는 전산화가 잘 돼 "장외금메달"이란 칭찬도 받았지요.
그러나 일부에선 기업이 할수있는 일을 성박사팀이 맡아했다는 비난도
있었는데.
<>성박사=난 예나 지금이나 민간기업이 할수있는건 손을 안 댑니다.
공인의식이랄까.
그런걸 생각하고 삽니다. 86아시안게임때 모기업은 돈에 관심이 있었고
데이콤은 명예를 얻고 싶었던것 같아요.
결국 일은 우리팀이 뒤에서 했어요. 서울올림픽때도 마찬가지였어요.
오명장관(당시 체신부장관)이 이를 알고 대전EXPO때는 우리에게 총책임을
맡겼습니다.
-컴퓨터에 대한 인식이랄까, 위상이랄까 하여튼 예전에 비해 크게 달라진
것같습니다.
<>성박사=PC쪽은 불이 붙었어요. 산불이 번져나가는 형국이죠. 그러나
소프트웨어쪽은 해야할 일이 태산같아요. 논리소자반도체분야도 공부많이
해야돼요.
-요즘 나라마다 정보초고속도로하겠다고 야단입니다. 컴퓨터와 통신이
결합하고 또 멀티미디어얘기도 분분한데 주도권은 어느쪽이 잡아야 합니까.
<>성박사=목적별로 책임을 분산해서 끌고가야 합니다. 돈을 마련하기에
통신쪽이 수월하다고 체신부가 주도하면 1백차선짜리 고속도로만 만들어
놓고 그위를 오갈 그무엇이 없는 텅빈 고속도로만 갖게되는 우를 범할
가능성이 커요.
-정보초고속도로를 짓되 이용도 함께 준비해야 한다는 얘기군요.
<>성박사=그렇죠. 범부처적인 협조가 중요하고 더욱이 민간참여도 고려
해야 합니다.
-멀티미디어란 말이 자주 쓰이면서 일종의 분위기를 타는것 같습니다.
이를 어떻게 보시는지.
<>성박사=휴먼인터페이스는 멀티미디어상표가 되겠죠. 그러나 가격문제
기술문제 소프트웨어개발등에 따라 양상이 달라질 겁니다. 10년이후에 올
세상에 대비해 연구하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하여튼 정보통신분야가 매우 다이내믹하게 돌아가는것 같습니다.
<>성박사=그렇습니다. 속도가 붙었어요. 이제는 해도되고 안해도 되는
그런게 아닙니다. 더욱이 우리의 문화 철학 주체의식등을 갖고 임해야
합니다.
-후진에게 하고푼 말씀은.
<>성박사=일제의 탓으로 한때는 한국인의 능력자체를 의심받던 시절이
있었어요. 지금은 꿀릴게 없어요. 자신감을 갖고 장기적인 목표를 세워
열심히 하면 국제적으로 인정받을수 있습니다.
-상고머리스타일이 늘 인상적입니다.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성박사=(빙긋이 웃으며) 유학시절 영어는 통하지 않는데 이발소엘
갔어요. 뭐라는지 알아들을수는 없고 그저 고개만 끄덕였어요.
몇분후에 거울을 쳐다보니 글쎄 율 브리너처럼 완전히 밀어버렸어요. 그
이발사말이 "Crew cut"이였던 모양인데 그저 머리만 끄덕인거죠.
그뒤로 다시는 이발소에 가지 않고 집에서 거울보고 손수깎습니다.
-요즘엔 어떤일에 관심을 쏟으시나요.
<>성박사=연구개발정보센터에서 과학기술정보의 데이터베이스화와 유통
체계구축에 관여하고 있습니다.
< 대담=강영현 과학기술부장 >
"컴퓨터의 대부", "전산계의 태두", "정보화의 전도사" 등으로 부르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한 직장에서 28년간 한우물(컴퓨터및 시스템)을 깊고 넓게 판 그는 불모의
컴퓨터싹을 키워왔고 무수한 연구개발을 통해 수천명의 고급인력을 양성한
천재과학자다.
성박사는 경북 성주군 초전면 대장동 작은 시골마을에서 6남매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성주농업5학년때 6.25가 나고 부친이 비명횡사하는 불행을 당한다.
상경해 미군부대 하우스보이 국수공장직공등을 하다가 귀향, 닭 돼지를
키우고 수박농사를 짓기도 했다.
53년 대입검정고시에 합격, 서울대공대화공과에 들어가고 조선항공공학과로
전과해 졸업한다.
공군장교시절 "로케트탄도의 근사공식"이란 논문이 미학술지에 실리고
이것이 계기가 돼 하버드대에 유학, 2년만에 석.박사학위를 받는다.
동대학 3백년역사상 처음있는 일이다.
대덕단지 시스템공학연구소에서 의구 성기수박사를 만났다.
-대학(서울대및 하버드대)서는 항공분야를 하셨는데 컴퓨터와의 인연은
언제 맺으셨나요.
<>성박사=우연찮게 이루어졌어요. 박사학위를 받은 후 내 학위논문을
다른사람들이 공학적으로 쉽게 응용할수 있도록 수치로 계산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전동탁상계산기를 며칠 쓰고 있는데 미국인 동료가 옆방에 더 좋은 기계가
있다고 해요. 가보니 하늘색 옷장같은 것들이 넓은방에 가득한데 그게 바로
IBM7090컴퓨터였습니다.
사용법을 익히고 나자 계산속도는 물론이고 방대한 수치와 계산과정까지
기억하는 능력에 경탄했습니다.
-항공분야는 당시 미.소의 인공위성개발경쟁으로 일자리도 많고 촉망받는
분야였을텐데.
<>성박사=물론이죠. 하지만 나는 그때 군인신분으로 유학을 갔고 그곳에서
5.16을 맞이해 어렵사리 2년만에 학위를 끝내고 귀국해야 하는 입장
이었습니다.
내가 공부한 것이 미국서는 인기가 있었으나 먹고 사는게 시급했던 한국서
는 무용지물이나 다를바가 없었어요.
-그당시 한국서 먹고 사는데 도움이 안되기는 컴퓨터도 마찬가지
아니었습니까.
<>성박사=그렇게도 생각할수 있겠으나 난 그때 컴퓨터에 큰 충격을
받았어요. 특히 기억력을 갖고 있다는데에 굉장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런게 있으면 사람들이 일을 더 능률적으로 할수 있겠다고 확신했습니다.
학문연구는 물론 은행 정부 기업등서 일을 더잘 할수 있을 것으로 생각
했어요.
-그때 이미 컴퓨터의 앞날을 꿰뚫어본것 같습니다.
<>성박사=결과적으론 그런 셈이군요.
-귀국해 바로 컴퓨터분야서 일을 하셨습니까.
<>성박사=공사교관으로 5년간 있다가 KIST에 전자계산실이 생겨(67년)
책임자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교관시절에 서울대 공대 문리대 상대
행정대학원등에서 시간강사로 OR등을 강의했습니다.
-KIST전산실장으로 갈때 박사께서는 세갈래 갈림길에 섰던 것으로
들었습니다.
<>성박사=하버드대 브린슨교수의 추천으로 캐나다의 웨스턴온타리오대
수학과교수로 가기로 결정돼 출국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그때 한국경제협회 일로 같이 일한 남덕우교수(전경제기획원장관)로부터
서강대경제학과교수 오퍼가 있었지요.
또 KIST소장인 최형섭박사(전과기처장관)가 컴퓨터책임자를 물색중이라는
얘기를 듣고 김정열공참총장(초대)이 저를 추천했습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때 최소장 김총장 송인상회장(당시 한국경제개발
협회장 전재무장관) 세사람사이에 모종의 합의가 이뤄져 나의 출국이 급기야
저지(?)됐고 나 또한 캐나다행을 강하게 고집하지 않았습니다.
-컴퓨터와는 뭔가 인연이 센 모양입니다.
<>성박사=그런 생각이 들 때도 있기는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대학에
다닌다면 아마 수학이나 물리학을 할 겁니다.
사실은 수학에 큰 매력을 느꼈습니다. 하버드에선 물리학에 빠지기도
했어요. 큰 아이(진원씨 연세대물리학과졸) 둘째(명희씨 서울대수학과졸)
셋째(진일씨 경원대전산과졸)가 모두 제가하고 싶었던 것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유전인가요. 아니면 진로를 그쪽으로 유도한 것인가요.
<>성박사=분위기에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해요.
-분위기란 어떤 의미인가요.
<>성박사=집에오고 만나는 사람들 동료 후배들을 보고 감수성이 예민한
어린시절 애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길을 고른겁니다.
난 집에서 애들과 대학얘기 안하고 살려고 했고 또 그랬습니다.
-KIST전산실을 키워 시스템공학연구소로 발전시켰고 92년까지 소장으로
있으면서 수많은 성과를 냈습니다.
한글입출력시스템 고입및 대입고사채점 증권전산화시스템 정부예산업무
전산화 전화요금전산화 88서울올림픽전산 슈퍼컴도입 컴퓨터공개프로그램
강좌등 한숨에 나열하기도 어렵습니다.
한국 최초의 데이터통신도 공로로 꼽히고 있는데.
<>성박사=1970년 홍릉의 KIST와 경제기획원간에 컴퓨터를 서로 연결해
썼으니까 데이터통신인 셈입니다. 이때의 경험과 인력이 현재 데이콤설립에
도움이 됐어요.
-서울 덕수상고에 터미널을 연결해 학생들에게 코볼 포트란등을 공부시킨
것도 당시로는 아주 혁신적인 일로 평가되고 있지요.
<>성박사=정부예산전산화사업에 KIST에서 안문석씨(현 고려대교수)가 참여
했습니다. 하루는 내게 와서 대통령에게 전산화의 중요성을 브리핑하지
않겠느냐고 해요.
강경식씨(당시기획원예산총괄과장 현국회의원)가 기회를 만들겠다는
겁니다. 그래서 대통령을 뵐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전산화의 우선순위 상고
교육의 중요성등을 건의했습니다.
이후 대통령이 관심을 갖자 장관들도 전산화에 신경을 쓰기 시작합디다.
그래서 입시자동채점 상고컴퓨터교육 전화요금전산화등이 이어진 것입니다.
-88올림픽때는 전산화가 잘 돼 "장외금메달"이란 칭찬도 받았지요.
그러나 일부에선 기업이 할수있는 일을 성박사팀이 맡아했다는 비난도
있었는데.
<>성박사=난 예나 지금이나 민간기업이 할수있는건 손을 안 댑니다.
공인의식이랄까.
그런걸 생각하고 삽니다. 86아시안게임때 모기업은 돈에 관심이 있었고
데이콤은 명예를 얻고 싶었던것 같아요.
결국 일은 우리팀이 뒤에서 했어요. 서울올림픽때도 마찬가지였어요.
오명장관(당시 체신부장관)이 이를 알고 대전EXPO때는 우리에게 총책임을
맡겼습니다.
-컴퓨터에 대한 인식이랄까, 위상이랄까 하여튼 예전에 비해 크게 달라진
것같습니다.
<>성박사=PC쪽은 불이 붙었어요. 산불이 번져나가는 형국이죠. 그러나
소프트웨어쪽은 해야할 일이 태산같아요. 논리소자반도체분야도 공부많이
해야돼요.
-요즘 나라마다 정보초고속도로하겠다고 야단입니다. 컴퓨터와 통신이
결합하고 또 멀티미디어얘기도 분분한데 주도권은 어느쪽이 잡아야 합니까.
<>성박사=목적별로 책임을 분산해서 끌고가야 합니다. 돈을 마련하기에
통신쪽이 수월하다고 체신부가 주도하면 1백차선짜리 고속도로만 만들어
놓고 그위를 오갈 그무엇이 없는 텅빈 고속도로만 갖게되는 우를 범할
가능성이 커요.
-정보초고속도로를 짓되 이용도 함께 준비해야 한다는 얘기군요.
<>성박사=그렇죠. 범부처적인 협조가 중요하고 더욱이 민간참여도 고려
해야 합니다.
-멀티미디어란 말이 자주 쓰이면서 일종의 분위기를 타는것 같습니다.
이를 어떻게 보시는지.
<>성박사=휴먼인터페이스는 멀티미디어상표가 되겠죠. 그러나 가격문제
기술문제 소프트웨어개발등에 따라 양상이 달라질 겁니다. 10년이후에 올
세상에 대비해 연구하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하여튼 정보통신분야가 매우 다이내믹하게 돌아가는것 같습니다.
<>성박사=그렇습니다. 속도가 붙었어요. 이제는 해도되고 안해도 되는
그런게 아닙니다. 더욱이 우리의 문화 철학 주체의식등을 갖고 임해야
합니다.
-후진에게 하고푼 말씀은.
<>성박사=일제의 탓으로 한때는 한국인의 능력자체를 의심받던 시절이
있었어요. 지금은 꿀릴게 없어요. 자신감을 갖고 장기적인 목표를 세워
열심히 하면 국제적으로 인정받을수 있습니다.
-상고머리스타일이 늘 인상적입니다.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성박사=(빙긋이 웃으며) 유학시절 영어는 통하지 않는데 이발소엘
갔어요. 뭐라는지 알아들을수는 없고 그저 고개만 끄덕였어요.
몇분후에 거울을 쳐다보니 글쎄 율 브리너처럼 완전히 밀어버렸어요. 그
이발사말이 "Crew cut"이였던 모양인데 그저 머리만 끄덕인거죠.
그뒤로 다시는 이발소에 가지 않고 집에서 거울보고 손수깎습니다.
-요즘엔 어떤일에 관심을 쏟으시나요.
<>성박사=연구개발정보센터에서 과학기술정보의 데이터베이스화와 유통
체계구축에 관여하고 있습니다.
< 대담=강영현 과학기술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