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경제관료] (28) 제3편 정책수립 매커니즘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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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3년5월12일 국회농림수산위 소회의실. 법안심사소위는 얼마전
말썽을 빚은 "농수산물유통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농안법)"축조심의를
벌인다. 그날밤 소위위원장인 신재기의원(민자당)은 전화 한통을 받는다.
"중매인의 도매행위를 금지하면 혼란만 초래한다"(김태수당시농림수산부
차관)는게 전화의 요지. 그러나 다음날인 13일 법률안은 소위를 통과한다.
중매인의 도매행위금지조항이 삽입된 채로.
지난5월16일 김농림수산부차관은 "농안법 중매인도매금지조항은 법안
발의자인 신의원이 단독 삽입했다"고 폭로한다. 그리고 "도전"을 한
김차관은 자신의 "경질"이라는 예정된 수순을 거친다.
관료들에게 의원입법은 또 하나의 성역이다. "상당수의 의원입법은 현실을
무시한 이상론에 치우쳐 있지만 어찌 해볼 도리가 없다"(경제기획원P과장)
문제를 짚어줘도 로마로 통하는 길은 하나. 결론은 이상론과 현실론의
타당성을 가름하는 잣대는 "힘의 우열"뿐이라는 것이다.
89년 의원입법으로 개정된 "주택임대차보호법"도 그랬다. 주택임대계약
기간을 1년에서 2년이하로 늘리자는 것이 골자였다. 건설부관료들이 시행
가능성에 회의적 목소리를 냈지만 "전세입주자보호"라는 명분을 당할수는
없었다.
시행단계에 들어가자 전세값이 배가까이 뛰었음은 물론이다. 개정취지도
빛이 바래고. 예는 얼마든지 있다. 주당 근로시간을 48시간에서 44시간
으로 단축한 "근로기준법개정안"(88년)이 상정됐을때도 똑같다. 당시
일본이나 대만의 법정근로시간은 주당 48시간.
지나치게 앞서 나간다는 지적이 안나올리 없었다. 그러나 남은건 "얼마
안가서 우리앞에 닥칠 경제사회적 어려움을 뻔히 내다보면서도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틀을 뛰어넘지 못하는 현실을 애통해할수 밖에 없었다"
(이철환경제기획원장관)는 고백일뿐.
의원입법의 순기능도 없는게 아니다. 농림수산위의 법안심사소위가 농안법
축조심의를 하던 같은날 국회상공자원위. 여기서도 한 법률안을 놓고 열띤
토론을 벌인다.
대상은 "기업활동규제완화에관한 특별조치법". "특조법이 발효되면 고용
의무완화로 인해 중소기업에 약3천억원의 혜택이 돌아갈 전망"(정해
상공자원부기획관리실장)이라는 강한 주장이 이채롭게 들린다.
법안을 발의한 의원들보다도 정부가더 열을 내고 있다. 열을 낸 내막을
알고보면 이내 수긍이 간다. "형식은 의원입법이었지만 뼈대는 상공자원부"
였으니 말이다.
"특별법제정은 가능한한 지양돼야한다"는 법제처나 경제기획원의 입장을
모를리가 없는 상공자원부가 "의원"을 등에 업은 것이다. 그래서 이법은
"반의반정입법"이라고도 하지만. 호가호위란 말은 이런때 쓰는 것일게다.
관료들이 반의반정입법을 선호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정부법안으로 상정
하려면 적어도 5단계의 심사과정을 더 거쳐야 한다. 실무자회의-관계차관
회의-경제장관회의-국무회의-법체처심의등. 부처간 이론이 있는 법안의
경우 국회문턱에도 가보지 못하고 중도폐기될 가능성이 크다.
실제 지난해 9월15일 열린 차관회의는 "건국이래 최장 차관회의"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정기국회에 상정할 법률안에 대해 부처간 의견차이가 컸던
탓이다.
부처간 의견조율을 생략한 법률이어서다. 그러나 반의반정 입법도 의원
입법만큼은 말썽을 빚지 않지만 현실성이 떨어지는게 사실이다.
문민정부들어 지난 3월말까지 완화된 1천6백여건의 경제행정규제중 예의
기업규제완화 특별법에 의한 것은 한건도 없었다. 규제완화대부분은
개별법의 개정방식에 의해 이뤄졌다.
지난해 의원입법(건설부 성안.반의반정법)으로 제정된 "지역균형개발법"
도 다를 바 없다. 이 법의 발효일은 7월8일이다. 그러나 아직 시행령조차
만들지 못하고 있다.
부처간의 의견차이가 주요인이다.
당정이나 부처간 "최대공약수"도출과정이 생략된 법률들은 문민정부들어
더욱 많아지고 있다. "개혁"이란 이름의 흐름에 역행해서는 곤란해서이다.
농안법이나 규제완화특조법 모두 "개혁입법"이란 꼬리를 달고 있다.
"개혁=지존"이라는 등식에 밀려 편의주의식으로 양산된 법이 걸어가는
길은 한가지다. 사문화다.
이런점에서 최근 "경제특별구역설치에 관한 특별조치법(안)"의 논란
과정은 시사점을 제시한다. 이 법안은 당초 강경식의원(민자당)과
유인학의원(민주당)에 의해 추진됐다.
여기에 상공자원부 특유의 "얹혀가기"까지 가세, "규제완화특조법"의
재판이 될 공산이 큰 것처럼 비쳐졌다. 그러나 재무부(조세형평에
어긋난다)와 노동부(열악한 노동환경을 스스로 조장한다)의 예상외의
강한 반대에 부닥쳐 아직도 성안단계에서 맴돌고 있다.
이 법안의 타당성 여부는 논외로 치자. 중요한 것은 관료들의 진지함
이다. 우리 경제관료들에게서도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나 할까.
<정리=하영춘기자>
말썽을 빚은 "농수산물유통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농안법)"축조심의를
벌인다. 그날밤 소위위원장인 신재기의원(민자당)은 전화 한통을 받는다.
"중매인의 도매행위를 금지하면 혼란만 초래한다"(김태수당시농림수산부
차관)는게 전화의 요지. 그러나 다음날인 13일 법률안은 소위를 통과한다.
중매인의 도매행위금지조항이 삽입된 채로.
지난5월16일 김농림수산부차관은 "농안법 중매인도매금지조항은 법안
발의자인 신의원이 단독 삽입했다"고 폭로한다. 그리고 "도전"을 한
김차관은 자신의 "경질"이라는 예정된 수순을 거친다.
관료들에게 의원입법은 또 하나의 성역이다. "상당수의 의원입법은 현실을
무시한 이상론에 치우쳐 있지만 어찌 해볼 도리가 없다"(경제기획원P과장)
문제를 짚어줘도 로마로 통하는 길은 하나. 결론은 이상론과 현실론의
타당성을 가름하는 잣대는 "힘의 우열"뿐이라는 것이다.
89년 의원입법으로 개정된 "주택임대차보호법"도 그랬다. 주택임대계약
기간을 1년에서 2년이하로 늘리자는 것이 골자였다. 건설부관료들이 시행
가능성에 회의적 목소리를 냈지만 "전세입주자보호"라는 명분을 당할수는
없었다.
시행단계에 들어가자 전세값이 배가까이 뛰었음은 물론이다. 개정취지도
빛이 바래고. 예는 얼마든지 있다. 주당 근로시간을 48시간에서 44시간
으로 단축한 "근로기준법개정안"(88년)이 상정됐을때도 똑같다. 당시
일본이나 대만의 법정근로시간은 주당 48시간.
지나치게 앞서 나간다는 지적이 안나올리 없었다. 그러나 남은건 "얼마
안가서 우리앞에 닥칠 경제사회적 어려움을 뻔히 내다보면서도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틀을 뛰어넘지 못하는 현실을 애통해할수 밖에 없었다"
(이철환경제기획원장관)는 고백일뿐.
의원입법의 순기능도 없는게 아니다. 농림수산위의 법안심사소위가 농안법
축조심의를 하던 같은날 국회상공자원위. 여기서도 한 법률안을 놓고 열띤
토론을 벌인다.
대상은 "기업활동규제완화에관한 특별조치법". "특조법이 발효되면 고용
의무완화로 인해 중소기업에 약3천억원의 혜택이 돌아갈 전망"(정해
상공자원부기획관리실장)이라는 강한 주장이 이채롭게 들린다.
법안을 발의한 의원들보다도 정부가더 열을 내고 있다. 열을 낸 내막을
알고보면 이내 수긍이 간다. "형식은 의원입법이었지만 뼈대는 상공자원부"
였으니 말이다.
"특별법제정은 가능한한 지양돼야한다"는 법제처나 경제기획원의 입장을
모를리가 없는 상공자원부가 "의원"을 등에 업은 것이다. 그래서 이법은
"반의반정입법"이라고도 하지만. 호가호위란 말은 이런때 쓰는 것일게다.
관료들이 반의반정입법을 선호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정부법안으로 상정
하려면 적어도 5단계의 심사과정을 더 거쳐야 한다. 실무자회의-관계차관
회의-경제장관회의-국무회의-법체처심의등. 부처간 이론이 있는 법안의
경우 국회문턱에도 가보지 못하고 중도폐기될 가능성이 크다.
실제 지난해 9월15일 열린 차관회의는 "건국이래 최장 차관회의"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정기국회에 상정할 법률안에 대해 부처간 의견차이가 컸던
탓이다.
부처간 의견조율을 생략한 법률이어서다. 그러나 반의반정 입법도 의원
입법만큼은 말썽을 빚지 않지만 현실성이 떨어지는게 사실이다.
문민정부들어 지난 3월말까지 완화된 1천6백여건의 경제행정규제중 예의
기업규제완화 특별법에 의한 것은 한건도 없었다. 규제완화대부분은
개별법의 개정방식에 의해 이뤄졌다.
지난해 의원입법(건설부 성안.반의반정법)으로 제정된 "지역균형개발법"
도 다를 바 없다. 이 법의 발효일은 7월8일이다. 그러나 아직 시행령조차
만들지 못하고 있다.
부처간의 의견차이가 주요인이다.
당정이나 부처간 "최대공약수"도출과정이 생략된 법률들은 문민정부들어
더욱 많아지고 있다. "개혁"이란 이름의 흐름에 역행해서는 곤란해서이다.
농안법이나 규제완화특조법 모두 "개혁입법"이란 꼬리를 달고 있다.
"개혁=지존"이라는 등식에 밀려 편의주의식으로 양산된 법이 걸어가는
길은 한가지다. 사문화다.
이런점에서 최근 "경제특별구역설치에 관한 특별조치법(안)"의 논란
과정은 시사점을 제시한다. 이 법안은 당초 강경식의원(민자당)과
유인학의원(민주당)에 의해 추진됐다.
여기에 상공자원부 특유의 "얹혀가기"까지 가세, "규제완화특조법"의
재판이 될 공산이 큰 것처럼 비쳐졌다. 그러나 재무부(조세형평에
어긋난다)와 노동부(열악한 노동환경을 스스로 조장한다)의 예상외의
강한 반대에 부닥쳐 아직도 성안단계에서 맴돌고 있다.
이 법안의 타당성 여부는 논외로 치자. 중요한 것은 관료들의 진지함
이다. 우리 경제관료들에게서도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나 할까.
<정리=하영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