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제도는 그동안 여러차례 변화됐다.

세계경제의 안정과 지속성장을 위한 기초조건으로서의 국제통화를 결정짓고
그 교환조건을 합의, 유지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환율전쟁으로까지 표현되고 있는 1차대전후의 국가간 환율인상경쟁에서
볼수 있듯이 시대상황은 번번이 또다른 국제통화제도를 요구했다.

>>> 금본위제도 <<<

금이나 은이 화폐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7백년께로 거슬러 올라
간다.

18세기 후반까지만해도 양이 풍부했던 은이 거래수단인 화폐로서 보다 많이
통용됐다.

그러나 1816년 영국이 금을 유일한 화폐로 인정하면서 금이 국제통화의
주역으로 떠올랐다.

금본위제는 이렇듯 각나라가 금을 유일한 화폐로 사용하면서 자연스레
형성됐다.

국가간 화폐교환비율인 환율은 자동적으로 고정됐다.

금본위제도는 1870년께부터 1차세계대전이 발발한 1914년이전까지는
탈없이 유지됐다.

그러나 1차대전이 발발하면서 대부분의 국가가 금태환을 금지, 보유하고
있는 돈을 금으로 바꿀수 없게 됐다.

종전이후 각국은 금태환을 재개, 금본위제에 복귀했다.

그러나 환율은 전쟁이전의 것을 고집했다.

경제사정이야 어떠했든 환율은 곧 국가위신과 연결된다는 생각때문이었다.

따라서 어떤 통화는 가치가 실제보다 높게 평가됐으며 어떤 통화는 낮게
평가돼 국가별 국제수지의 불균형이 심화됐다.

>>> 브레이튼우즈체제 <<<

세계전쟁에 이은 30년대 공황으로 무역과 자본이동 위축을 경험한 주요
국가들은 새로운 국제통화제도 설립을 위해 서둘러 여러 대안들을 검토했다.

논의는 영국정부가 43년4월 제시한 "국제청산동맹안"(케인즈안)과 동년
5월 미국정부가 내놓은 "연합국환안정기금 예비초안"(화이트안)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44년4월 미국 뉴욕에서 열린 30개국 전문가회의에서는 이중 미국의
화이트안을 채택했다.

이에따라 44년 7월1일 미국 뉴햄프셔주 브레튼우즈(Bretton Woods)에서
연합국 44개국이 참가한 국제통화회의가 개최됐다.

이 회의에서 참가국들은 국제통화기금(IMF)설립에 합의, 국제통화제도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브레튼우즈체제는 사상 처음으로 명백한 국제협정에 근거를 두고있는 국제
통화제도란 점에서 의의가 있다.

브레튼우즈체제는 금.달러본위제와 고정환율제를 뼈대로 하고 있다.

우선 유일한 강대국인 미국이 자국통화인 달러의 가치를 일정량의 금에
고정시키고 나머지 국가들은 달러에 대해 자국화폐의 가치를 결정했다.

자국화폐의 가치를 금 또는 일정한 중량과 순도의 금을 함유하고 있는
7월1일 현재의 달러화(1달러=순금 0.888671g)로 표시토록 했다.

미국은 다른나라 정부가 보유한 달러를 언제든지 금으로 바꿔줬다.

각국통화는 이처럼 달러에 연결됨으로써 간접적으로 금에 연결될수 있었다.

달러가 세계의 기축통화로 등장한 것이다.

경제활동을 위해 환율을 고정시키기로 했다.

각국통화는 평가(기준환율)의 상 하 1%범위내에서 고정시키도록 했다.

그러나 고정환율제도는 여전히 국제수지불균형조정에 효율적이지 못했다.

금이 세계경제성장에 맞춰 공급되지 못한데다 상업용수요도 크게 늘어
유동성부족사태를 초래했다.

실제로 세계총준비자산에서 차지하는 금의 비중은 급격히 낮아졌다.

59년에 66%를 점유했으나 70년에는 40%로 줄어들었으며 그 정도는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이에비해 달러가 차지하는 비중은 크게 늘었다.

그러나 세계경제성장에 비례한 달러공급은 미국의 재정적자를 전제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미국의 금보유량 감소와 더불어 달러에 대한 신뢰가 갈수록
약해졌다.

결국 71년 8월15일 닉슨대통령은 달러를 금으로 교환하는 창구를 폐쇄했다.

달러의 금태환정지를 선언한 것이다.

금.달러본위제를 기초로 했던 브레튼우즈체제는 자연히 막을 내렸다.

>>> 스미소니언체제 <<<

달러의 금태환정지와 함께 미국이 달러의 평가절하를 유도할 움직임을
보이자 달러투매로 인한 혼란이 가중됐다.

이를 수습하기 위해 선진 10개국 재무장관과 중앙은행총재가 71년12월
워싱턴 스미소니언박물관에 모여 스미소니언협정에 합의했다.

이 회의에서는 각국의 기준환율을 재조정했다.

달러는 8% 평가절하해 금 1온스의 가격이 35달러에서 38달러로 인상됐다.

엔화는 17%, 마르크는 14%, 파운드와 프랑은 각각 9%, 리라는 8%씩 달러에
대해 평가절상됐다.

고정환율제도는 유지하되 금 또는 달러를 기준으로 평가했던데서 벗어나
IMF의 특별인출권(SDR)과 타국 통화를 기준으로 환율을 표시할수 있도록
신축성을 부여했다.

종전 상 하 1% 범위의 환율변동폭을 확대, 2.25% 범위에서 변동할수 있도록
했다.

브레튼우즈체제의 연장선상에서 합의된 스미소니언체제는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일시적으로 멈췄던 투기가 되살아나 외환시장이 하루걸러 마비됐으며 국제
수지불균형도 확대됐다.

>>> 킹스턴체제 <<<

새로운 국제통화제도 확립을 위해 74년 IMF 자문기구로 설립된 잠정위원회
가 76년1월 자메이카의 킹스턴에서 열린 5차회의에서 국제통화제도개혁에
관련된 문제들을 일괄타결했다.

이에따라 IMF협정 개정안이 76년4월 IMF총회에서 채택되고 78년 4월1일
발효되면서 킹스턴체제가 출범, 오늘에 이르고 있다.

킹스턴체제는 각국이 경제적 여건에 맞는 환율제도를 선택할수 있도록
재량권을 부여함으로써 변동환율제도를 공식 인정했다.

다만 환율의 급격한 변동을막 기위해 각국 중앙은행이 외환시장에 개입하는
소위 관리된 변동환율제를 기초로 했다.

IMF는 환율질서를 감독하고 각국의 환율정책수립에 지침이 될 원칙을 제정
했다.

국제수지적자국에 대한 신용지원 기능도 강화했다.

또 금의 역할은 축소했다.

공정가격을 폐지해 금본위제도하에서의 가치기준및 IMF의 권리나 의무에
대한 기준으로서의 금의 기능을 공식적으로 없앴다.

대신 특별인출권(SDR)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SDR는 금생산량이나 주요통화국의 국제수지적자와 관계없이 유동성을 공급
하기 위해 IMF가 69년 만들어낸 새로운 준비자산으로 "종이금"이라고도
부른다.

<김재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