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할 것도 없이 우에다 데이코를 강간한 나가노 게이지로에 대한 재판
이었다. 그러니까 피고는 나가노였고, 고소인은 데이코인 셈이었다.

그 재판의 개최 여부를 두고 고관들사이에 논란이 있었다. 사절단의 수치
이니 그냥 덮어버리는 것이 옳다는 주장과 이미 알려져 버린 일인데, 그런
못된 짓을 덮어 버린다는 것은 오히려 비난받을 일이니, 약식으로라도 재판
을 열어서 벌을 주는 것이 마땅하다는 주장이 맞섰는데 직접 현장을 목격한
이토는 그냥 눈감아 줄수는 없는 일이라고 재판의 개최를 지지하며,

"데이코가 무슨 말을 했는지아세요? 고고헤이카께서 일본 여성의 모범이
되라고 당부하셨는데, 이런 꼴을 당했으니 이제 모범이 되기는 다 틀렸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만약 나가노를 처벌하지 않을 경우에는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겁니다.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니까요"이

렇게 말했다.

그말에 재판을 반대하던 사람들이 입을 다물어 버려서 결국 재판개최로
결론이 난 것이었다.

이토가 재판관을 맡게 되었다. 사건을 목격한 터이니 적당히 알아서 판결을
내리라는 취지였다.

태평양을 건너가는 지루한 항해중에 약식이기는 하지만 강간사건을 다루는
재판이 열렸으니 사절단 일행은 오래간만에 재미있는 일이 생겼다는 듯이
좋아들 하였다.

배안에 있는 중간홀에서 열렸는데 꽤 넓은 장내가 방청객으로 발들여 놓을
틈이 없을 정도였다.

대혼잡을 이룬 것과는 달리 재판은 싱거울 정도로 간단히 끝났다.

피해자이며 고소인 격인 데이코는 창피해서 그런지 참석하지도 않았고
피고인 나가노 한 사람을 앞에 앉혀놓고 이토는 그날밤 일에 대하여 심문
했다.

나가노는 마치 사건의 책임을 술에 떠넘기듯 시종 술기운 때문에, 과음을
한 탓에, 술에 취해 정신이 없어서... 하고 술에 빗대어 자기 변호를
해댔다.

심문을 마친 이토는 언성를 가다듬어,

"피고 나가노 게이지로는 앞으로 아메리카에 도착할 때까지 첫째, 술을
일절 입에 대지 말것. 둘째, 여자 유학생에게 말을 걸지 말것. 셋째, 해가
진뒤에는 자기 방에서 한발짝도 밖으로 나가지 말것. 알겠는가?"

하고 언도를 내렸다.

장내에 와- 웃음이 터졌다.

재판이라는 것이 마치 일장의 코미디 같았던 것이다.

사절단 일행은 24일 걸려서 태평양을 횡단하여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랜드호텔에 여장를 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