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2일 한이헌경제기획원차관 방에는 상공자원부 체신부차관이
자리를 같이 했다.

지난해말부터 추진되다 부처간 이견으로 좌초위기에 빠진 정보화촉진법을
다시 살려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회의는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정보는 우리의 고유영역"(체신부)
이라는 주장과 "정보는 당신네 소관일지 모르나 정보도 산업인만치 산업계를
관장하는 부처가 맡아야 한다"(상공자원부)는 입씨름만 하고 끝났다.

합의된 내용이라곤 연내에 이법을 만들긴 만들겠다는 원칙만 확인했을
뿐이다.

상공자원부와 체신부가 서로 주관부처가 되겠다는 것은 신설될 정보화촉진
기금을 탐내기 때문이다.

두부처가 싸우는걸 보다못해 당분간 기획원이 맡아 "신탁통치"하면
어떻겠냐는 중재안에 대해서도 두부처는 막무가네다.

"초단위"로 바뀌는 정보산업에 대응키 위한게 이법의 취지이나 정부는
관할권다툼으로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는 셈이다.

정보화촉진법이 "밥그릇싸움" 때문에 일어난 정책표류라면 "뜨거운 감자
떠넘기기"로 정책수립이 안되는 경우도 있다.

한양의 합리화지정문제가 대표적 사례다. 재무부는 상업은행의 부실화를
막기 위해서도 한양을 합리화업종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자기이름으로 산업정책심의회 안건상정등 합리화업종 지정 수순을
밟기를 꺼리고 있다.

"한양을 인수하는 주공이 건설부산하니 건설부가 맡으라는 것이다"(재무부
K과장).

하지만 이 문제에 "총대"를 메고나설 건설부도 아니다. 기획원도 똑같다.
여론의 질책을 두려워해 모두가 꽁무니를 빼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부처들은 찬성이냐 반대냐를 내놓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그게 요즘
"과천"의 풍속도다.

자기속을 숨기는 "더듬수"때문에 정책이 실패하는 수도 있다. 좀처럼
자기 속을 드러내지 않는다.

아무말없이 남의 말을 듣고만 있다가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농림수산부가 특히 그러하다는 지적이다. "올초에 파값이 급등하기 직전에
농림수산부는 농산물 수입대책에 합의했다. 그러나 그들은 차일피일
미뤄가며 더듬수를 놨다"(경제기획원 J국장).

더듬수를 놓는것은 자기를 보호해줄 지원세력규합에 시간이 걸리기 때문
이다.

예컨대 국민정서상 절대 피해를 입어서는 안되는 농민이 뒤에 버티고 있다.
또 농촌출신 국회의원이 정치판에서 밀어주고 있다.

농민 농촌의 이름을 내건 각종 이익단체가 즐비하다. 그래서 이들의 이익을
위해서는 파값이 급등해 서민가계에 부담을 주더라도 모르는체 한다.

사실상 정책협의 거부형이다. 사실 농림수산부는 지난해 UR농산물협상때도
그랬다.

각부처와 솔직한 입장을 털어놓고 협의한게 아니라 더듬이만 이리저리
돌리며 엉거주춤한 자세로 일관했다.

결과는 얻은것 없이 시장을 대폭 양보해준것 뿐이다. 이같은 유형의 정책
표류내지 정책실패는 문민정부이후 드세졌다는게 "과천"의 자체진단이다.

각부처의 장관중 대통령과 지근거리에 있는 인사들은 좀처럼 양보라는게
없다.

"''배경''을 내세우는 각부장관을 총리나 경제부총리가 ''자리''의 힘을 빌려
컨트롤하기가 쉽지않은 상황이다"(경제기획원 L국장)는 지적이다.

이런 "장관이기주의"는 이인제장관때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는게 정책조정
을 맡은 기획원의 주장이다.

그러나 다른 부처는 기획원의 조정력부재를 탓한다. 기획원이 부처자율
이란 명분으로 "팔짱만 끼고 있다"는 것이다.

"정재석부총리는 취임초에 기획원은 리더(Leader)가 되지 말고 후견자
(Care-taker)가 돼야 한다고 기획원성격을 규정했다.

그리고 되도록 부처가 하는 일에 간섭하지 말고 도와주라고 했다. 부총리의
이말이 떨어지면서 기획원은 두손을 놓고 있다"(체신부 L국장)

기획원의 진단이 옳은지 다른 부처의 분석이 맞는지 시시비비를 가리기는
쉽지 않다.

누구의 잘못이든 정책을 표류시킨 것은 사실이고 아직도 이런 상황은
이어지고 있다.

누군가가 팔을 걷어부치고 나서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여기
저기서 나오는 이유도 이래서다.

경제기획원의 젊은 사무관들은 이렇게 말한다. "간섭하지 말라는 말을
조정행위포기로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 기획원은 팔짱만 끼고 눈치를
보거나 힘쎈 부처의 장관이기주의에 짓눌리거나 더듬수놓는 장관들에 끌려
가서도 안된다. 이런 장관들은 필요없다"

국민들도 한개 부처의 "장관능력"보다는 국정을 책임진 국무위원의 자세를
아쉬워 한다.

"강력한 리더가 없이 적당히 추진된 정책은 해당부처의 사리사욕을 충족키
위한 수단으로 변질된다"(경제기획원 J과장)는 자체경고에 귀를 기울일
때다.

<정리=안상욱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