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피는 또 뭡니까?"

"국가를 위해서 서슴없이 목숨을 내던질수 있는 병사들을 말하는 거요.
그 세가지가 다 잘 갖추어져야 비로소 강국이 될수 있소"

이번에는 이토가 질문을 했다.

"쇠와 뜨거운 피에 대해서는 잘 알겠는데, 첫째의 강력한 정치란 어떤 것을
의미하는 건지 좀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십시오"

소위 정치가라는 사람이 그것도 모르느냐는 듯한 눈길로 이토를 훑어보고
비스마르크는 입을 열었다.

"내리 누르는 정치지 뭐 별다른 거겠소. 반대파를 힘으로 내리누르는 거요.
요즘 민주주의니 뭐니 해서 이러쿵 저러쿵 입으로만 떠들어대는 돼먹지
않은 정객들이 많은데, 그래가지고는 무슨 일을 해낼수가 없다 그거요.

그런 사람들을 여지없이 내리눌러서 꼼짝 못하고 따라오도록 해야 되오.
정치가뿐 아니라 국민들도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도록 해야 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소.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중요한게 경찰이오. 강력한 경찰을
가져야 된다 그거요. 알겠소?"

철혈재상다운 말이었다. 결국 경찰국가를 만들어야 강국이 될수 있다는
논리였다.

강력한 경찰을 가져야 된다는 비스마르크의 말은 질문을 했던 이토보다도
오히려 오쿠보의 머리에 심지처럼 박혔다.

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우수한 다량의 무기와 충성스러운 군대가 있어야
된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강력한 경찰이 필요하다는 말은
처음 들었던 것이다.

그 말에 유난히 귀가 번쩍했던 오쿠보는 실제로 귀국하여 실권을 손아귀에
쥐게 되자, 강력한 경찰을 창설해서 비스마르크가 설파한대로 내리누르는
강권통치를 펴나갔다.

그러니까 어쩌면 일본에 새로 들어선 메이지 정부의 성격을 비스마르크가
결정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베를린에 머무르는 동안 이와쿠라 전권대사는 본국 정부로부터 보내온 한
통의 서한을 받았다.

태정대신인 산조 사네도미가 보낸 것이었다. 산조는 공경(황실의 귀족
정치가) 출신으로 이와쿠라와 손잡고 존황양이파의 중심이 되어 막부 타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메이지 신정부가 수립되자 중용된 사람이었다.

아직 나이는 삼십대였으나 정부의 대표격인 태정대신 자리에 올라 있었다.

그가 보낸 서한을 펼쳐 읽어내려가는 이와쿠라의 표정이 차츰 심각
해지더니,

"음- 문제가 간단치 않은 모양인데..."

하고 혼자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