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열치열" "이금치열". 사람들의 여름나기는 가지가지다. 은행원들도
마찬가지다. 은행원들의 여름나기중 대표적인게 바로 이 두가지.

전자가 일반적인 방법이라면 후자는 은행원 고유의 방법이다. 기상관측이
시작된이후 최고의 무더위라는 올 여름에도 무려 2백30여km를 달리는
은행원이 있다.

매일 수십억원의 돈더미에서 씨름하는 은행원도 존재한다. 은행원들이래
봐야 무더위앞에 맥못추기는 마찬가지지만 이들은 다르다.

이들이야말로 은행에선 내로라하는 "보물"이고 "철인"이다.

박중헌 신한은행종합기획부대리(37).

그는 "철인"이다. 무더위에 땀한방울 흘리지 않아서가 아니다. 공식적인
칭호가 우리나라 "제35호 철인"이다.

박대리는 지난23일 2백26.095km를 달렸다. 아니 달리고 헤엄치고 자전거를
탔다. 바닷물 수영 3.9km를 비롯 <>마라톤 풀코스 42.195km <>사이클 1백
80km등이다. 그것도 단 16시간 1분만에.

박대리가 참가한 경기는 제주도에서 열린 "제4회 한국철인 3종경기"
말그대로 철인을 뽑는 경기에서 당당 26위로 골인했다.

박대리가 "철인"칭호를 얻은 것은 지난 92년. 제주도에서 열린 "제2회
한국철인3종경기"에서였다.

그는 2백26여km를 15시간 52분에 주파, 17시간안에 골인해야 주어지는
"철인"칭호를 거뜬히 획득했다.

국내에선 35번째. 지난해 열린 제3회대회에서는 13시간 10분에 주파, 기록
을 무려 2시간 42분 단축하기도 했다.

박대리가 철인경기와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90년. 불어나는 몸무게를 줄여
볼까하는 요량으로 수영을 시작한것이 계기가 됐다.

이후 박대리의 생활은 "철인"에 걸맞게 이뤄지고 있다. 일과시작은 수영장
에서, 은행에서 집까지 퇴근은 마라톤으로, 저녁시간은 사이클연습장에서.

특히 퇴근시간에 은행화장실에서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남산순환도로를 뛰는
박대리의 모습은 남산에서 빼놓을수 없는 명물이 됐다.

그러다보니 가족 모두도 "운동가족"이 됐다. 중학교양호교사인 부인은
아예 자전거로 출근할 정도이고 두 아들도 학교에서 운동에 관한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정도.

박대리는 25일 KBS의 "사람과 사람"이라는 프로그램에 "아빠! 힘내세요"
라는 제목으로 30분동안 출연, 은행원의 여름나기를 보여주기도 했다.

박대리가 이열치열로 올여름을 나고 있다면 서태석 외환은행외환부대리
(51)는 이금치열으로 여름을 지내는 은행원이다.

돈으로 더위를 제압하고 있어서다. 물론 은행원들 전부가 돈을 만지면서
여름을 난다.

그러나 서대리는 순전히 현찰만 만지면서 지낸다는 점이 다르다. 서대리가
하는일은 외화위조지폐식별.

오전9시 금고문이 열리면서 그의 일은 시작된다. 그때부터 오후 5시30분
까지 점심시간을 빼놓고는 꼬박 돈만 센다.

돈을 세는게 아니라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가려낸다. 건성건성 넘기는것
같으나 그의 손에 의해 골라지는 지폐는 어김없이 가짜다.

그렇다고 위조지폐만을 가리는건 아니다. 새로운 돈이 만들어져 수명이
끝난돈을 골라내는 것도 중요한 일.

유통되지 않는 외국돈을 우리돈으로 바꿔준다면 은행으로선 손해를 볼수
밖에 없는 노릇이다.

서대리가 이렇게 하루종일 헤아리는 돈은 1백달러짜리 1만여장. 미화로
1백만달러 안팎이다. 우리돈으로 8억원에 달하는 돈이다.

그렇다고 매일 달러화만 세는건 아니다. 일본엔화와 프랑스프랑화에서부터
말레이시아 링게트화까지 25개나라의 돈을 만진다.

지폐종류로는 모두 1백70여가지에 달한다. 이들 지폐를 만져보기만하고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가려내는 것이다.

서대리가 위조지폐구별에 관한한 "인간문화재"의 경지에 다다른 것은 하루
아침의 일이 아니다. 그가 외환은행에 들어온 때는 지난 70년6월.

그후 꼬박 24년동안을 위조지폐식별업무만 해왔다. 그동안 위폐를 진폐로
가려내는 실수를 한번도 한적이 없다.

오히려 기계도 구분하지 못하는 위조지폐를 한번 만져보고 가려내는
신통력을 발휘해 왔다.

그래서 서대리는 은행내부에선 "행보 1호"로 꼽힌다. 신한은행의 박대리가
"장외의 철인"이라면 서대리는 "장내의 철인"인 셈이다.

서서히 인간을 지배해가는 기계들을 무색하게 만들고 있어서다.

이밖에도 은행에는 철인들이 많다. 아프리카대륙을 종단하고 아마존강을
뗏목으로 탐험했으며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킬리만자로를 올랐던 정배식
중소기업은행 동교동지점차장도 그중 한사람이다.

철인. 분명 말만들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억지 칭호일수 있다. 그러나 이들
철인들의 생활은 무더위를 식힐만한 청량제인것만은 분명하다.

<하영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