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용 컴퓨터및 네트워크장비업체인 한아시스템의 신동주사장(36)은
"왜이럴까. 더 잘 할수있는데."라는 생각에서 창업을 결심했다.
월급장이의 푸념이 한아라는 새새명의 탯줄이 된 것이다.

이때가 한창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91년 여름. 금성사 정보기기연구소에
근무하던 신사장은 기술통이었지 자금이나 조직 기획 마케팅등에는
문외한이었다. 사업을 하면서 어음용지를 처음 봤을 정도.

그렇지만 내집을 짓고 내 식구를 먹여살리는데는 "무지"가 면죄부가 될
수는 없었다. 빠른 판단으로 최선을 다할 수밖에.

한아의 창업멤버는 연세대 공대석사출신인 신사장을 비롯해 5명. 모두
대기업 출신이다. 납입자본금5천만원은 신사장이 만기가 돼 찾은 재형저축
1천여만원과 친지들로부터 차입한 2천여만원, 창업멤버들이 십시일반으로
출자한 돈으로 충당했다.

한아는 기술집약형 중소기업이라는 칼라를 살려 무난한 첫 출발을 보일
수 있었다. 모대기업에 장비및 소프트웨어(SW)관련 기술용역을 수주,
많지는 않지만 매출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개발비로 계약금과 중도금, 잔금등을 받아 "연명"해 나갔다. 작은
이익금으로 독자품목개발에 나설수 있었다. 92년에는 첫 작품을 냈다.

한국통신으로부터 망관리장비부문의 통신중재장치(CMD)가 정식기종으로
선정됐다. 신사장이 창업아이템으로 생각해 두었던 것을 사업화하게 된
것이다.

금성사근무시 중형컴퓨터개발에 참여했던 신사장은 중형컴퓨터기술을
산업전자나 통신분야에 접합시키고 싶은 엔지니어로서의 꿈이 있었다.
CMD는 그꿈의 한자락을 장식하는 것이다.

CMD개발에 따른 기술축적으로 한아는 터미널서버 이더넷보드 첨단컴퓨터
보드인 VME보드등 네트워크장비를 잇따라 국산화했다. 제품이 가치나
수요가 분명한데도 덩치큰 기업들이 손대기에는 어려운 품목들을 하나하나
국산화의 대열에 합류시킨 것이다.

한아는 정보고속도로의 핵심이랄수있는 ATM교환기중 개인용컴퓨터용
인터페이스보드기술을 보유, 이분야로의 사업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멀티미디어사회를 앞당기는 것은 여러분야가 골고루 발전해야지만
네트워크기술이 뒷받침돼야한다. 신사장은 네트워크에 필요한 모든 제품을
국산으로 대체해 주는 것이 꿈이다. 미국의 시스코,스트라타콤등과 겨루고
싶어한다.

창업한지 만3년이 되는 한아는 올해 20억원의 매출달성이 순조로울 전망
이다. 식구도 32명으로 늘었다. 주위에선 한아를 두고 "신마피아"라고
부른다. 빠른 의사결정으로 좋은 결실을 맺는 패기를 빗대어 말하는
것이다.

대기업의 느린 체질이 싫어서 뛰쳐나왔다는 신사장은 대기업에서의
경험이 경영관을 세우는데 도움이 됐다고 말한다.

직급낮은 직원들의 의견도 충분의 들을 것, 조직관리는 철저히 할 것,
거미줄같은 인맥을 정보취득의 자원으로 활용할 것등. 결국 적은 비용
으로 최고의 질을 만드는 것이 신사장의 창업정신인 셈이다.

신사장은 한가지 아쉬운 것이 있다. 새로 개발해 시장에 내놓는 제품이
모두 국산1호라는 꼬리표를 달기에 판로개척이 어려운 것이다. 그렇지만
술자리에서 형님이라고 따르는 종업원들을 생각하며 오늘도 힘겨운 자신
과의 싸움을 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