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도 신페이는 사가번출신으로 일찍이 존황양이 운동을 위해 탈번을 했던
지사였다.

무진전쟁 때는 동정대총독부 감군으로 참전했고, 유신정부의 법무경을 거쳐
참의가 된 사람이었다.

그는 열렬한 정한론자이기도 했다.

에도는 공연히 이맛살을 잔뜩 찌푸리기까지 하며 열기를 더하여 말을 이어
나갔다.

"대원군인가 뭔가 그 자가 우리와 한바탕 싸워볼 속셈임에 틀림없다구요.
무법국이라는 말을 쓴 것은 간접적으로 선전포고를 한 거와 다름없어요.
싸움을 걸어오는데 싸우지 않을 수가 있나요? 그렇잖아도 정한론이 한창
고개를 들고 있는 판국인데, 잘 됐지 뭐예요. 즉시 출병토록 합시다"

"에도공의 생각은 좀 지나친 것 같군요. 무법국이라는 말을 썼다고 해서
그것을 간접적인 선전포고라고 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에요. 이 전령서는
우리에게 보낸 외교문서가 아니라, 자기네끼리 명령을 하달한 것에 불과
하잖아요. 반드시 우리와 싸울 생각이 있다고는 볼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감정을 자제하고 좀 더 신중히 생각해서 냉철한 판단을 해야될 거예요"

이렇게 나온 것은 오쿠마 시게노부였다.

오쿠마는 에도와 같은 사가번 출신으로 존황양이파이기는 했으나, 주로
외교에 수완을 발휘하여 신정부에 중용된 사람이었다.

평소 같은 번 출신이면서도 에도의 열렬한 정한론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입장을 취해온 신중파였다.

에도가 가만히 있을 턱이 없었다.

"자기네끼리 명령을 하달한 것에 불과하다면 왜 이 전령서를 일본관의
정문에다가 붙였느냐 말이오. 출입하는 일본사람들에게 보라고 붙인게
아니고 뭐요. 그렇다면 간접적으로 우리에게 의사 전달을 한게 아니고
뭐겠소? 우리 일본인들을 양코배기와 같다니, 그리고 무역을 하는 상인들을
밀수꾼이라니 말이 되오? 이런 모독이 어디 있느냐 말이오. 전쟁을 각오하지
않고서 이런 말을 공개적으로 할수가 있는 거요?"

"양코배기와 같다는 업신여김을 당해도 할말이 없다고 생각되는데요.
우리가 서양사람들을 오랑캐라 해서 배척한게 언젠데, 어느덧 양이는 간곳이
없고, 용모까지 그들을 따르고 있으니, 아직도 쇄국을 하고 있는 조선측에서
보면 가소로울게 아니겠소"

"아니, 지금 오쿠마공은 누구 편을 들고 있는 거요? 응?"

오가는 말이 험악해지려 하자,

"어험"

큰 헛기침을 한 것은 사이고였다.

그는 가뜩이나 큰 두 눈을 굴렁거리며 불쑥 내뱉었다.

"출병은 안돼요. 그렇다고 이 일을 묵과할 수도 없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