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민정부의 첫 부실기업처리 케이스인 한양의 산업합리화업체 지정문제가
기약도 없이 표류하고 있다. 문제가 제기된지 14개월이 지났지만 관련부처
간의 입장차이로 의견조율이 이루어지지 않아 당사자들의 골병만 깊어져
가고 있는 상황이다.

원인은 간단하다. 관련부처 마다 자기부처의 입장만을 고려해 일방적인
요구를 하거나 대면을 기피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부처이기주의가 빚어낸 대표적인 정책혼선 사례가 되고 있다.
한양을 산업합리화 업체로 지정해야 한다는 재무부는 기준도 없이 "현실"
만을 내세우고 있으며 경제기획원은 무리를 알면서도 "원칙"만을 고수하고
있다. 그런가하면 건설부는 당사자가 아니라며 "방관"으러 일관하고 있다.

재무부의 입장은 일찌감치 정해졌었다. 한양을 부도처리 할 경우 국민
경제적인 파장이 너무 크기 때문에 합리화업체로 지정해야 한다는것이다.

산업합리화를 결정할 경우 가장 큰 문제가 특혜시비이지만 이번엔 문제가
안된다는 게 재무부의 설명이다.

부실기업을 인수하게 되는 주택공사가 특정인이나 개인기업이 아니기
때문에 특혜를 주더라도 결국엔 국민의 이익으로 환수된다는 주장이다.

오히려 한양을 부도처리 할 경우 한양이 지은 아파트를 분양받은 사람
이나 납품업체등이 큰 피해를 입게돼 국민의 부담으로 돌아온다고
강조하고 있다.

지정과정에서 특별부가세등 약2천억원의 세금감면을 받게되나 이 역시
부도를 내는 것보다 낫다고 강조하고 있다.

한양을 합리화업체로 지정하지 않을 경우 상업은행이 한양의 담보부동산
을 팔아 채권회수에 들어가게 되는데 이렇게 되면 한양은 담세능력을
잃게되고 그나마 감면받고 남는 세금조차도 내지못하게 된다는 얘기다.

이같은 현실론에 대해 경제기획원은 합리화지정 요건을 구비하지
못했다는 점을 들어 난색을 표시하고 있다.

지난 86년2월에 제정된 "산업합리화 지원기준"에는 <>산업구조조정
<>기업군의 계열기업정리 <>은행의 부실채권정리 때에만 산업합리화를
지정할 수 있게 돼있다.

이번 한양의 사안은 은행의 부실채권정리 조항을 근거로 해야 하는데
이 조항은 기준제정후 3년간만 한시적으로 적용할 수 있도록 돼있어
이미 4년전에 소멸됐다는 것이다. 적용근거자체가 없는데 어떻게
지정하는냐는 설명이다.

하지만 이것은 표면적인 이유이고 기획원의 내심은 다른데 있다. 특정
기업과 은행의 부실경영 책임을 왜 조세감면 혜택을 주어가며 국민부담
으로 해결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4일 한이헌 기획원차관도 "한양을 합리화업체로 지정하려면기준을
바꾸어야 하는데 여기에는 부담을 짊어지게될 국민의 동의절차가 필요
하다"며 "부실을 일으킨 당사자들이 고통을 겪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기에다 공기업의 경영쇄신을 위해 반발을 무릅쓰고 민영화를 추진하는
상황에서 부실덩어리를 공기업에 덧붙이는 게 온당한 처사냐는 지적까지
가세돼 있기도 하다.

건설부는 자세도 불분명하다. 건설부내에 한양의 합리화지정을 반대하는
견해는 없다. 하지만 나서서 지정을 요구하거나 다른 부처에 입장을
전달한 적도없다.

은행의 부실채권정리를 위한 산업합리화 문제이기 때문에 당사자가
아니라는 설명이다. 속을 보면 나중에 책임이 따를 수 있는 "궂은일"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의도로 비쳐지고 있다.

따지고 보면 현실도 중요하고 원칙도 준수돼야 한다. 문제는 이렇게 입
씨름만 하고 있는 사이에 사황이 악화되고만 있다는 데 있다.

한양은 주인없는 상태가 1년을 넘기면서 경갱생여지가 갈수록 좁아지고
있고 5천여개의 납품업체들은 대금지급이 지연돼 극심한 자금난을 겪고
있다. 상업은행은 밑빠진 독에 물붓기식으로 계속 자금을 대고 있지만
한계를 느끼고 있다.

경제계에선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어느 쪽이건 결정을 내려주는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진료를 미루는 사이에 환자가 회생불능에 빠지면 의사가
책임을 져야한다 것조차 모르는게 아니냐는 지적도 이래서 나온다.

<정만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