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뒤 두번째 각료회의가 개최되었다. 출병이냐, 사신 파견이냐 하는
문제로 논의가 오갔는데,사신 파견쪽으로 쉽사리 의견이 모아졌다.

그런데 단 한사람 사신 파견도 반대한 사람이 있었다. 오쿠마였다.

전번 회의때는 그저 신중론을 폈고, 회의가 끝나고 복도를 걸으면서
사이고에게 사적으로 구미사절단이 돌아온 다음에 전원회의에서 논의
하는게 어떻겠느냐고 말했던 그가 이번에는 당당히 자기 주장을 폈던
것이다.

"사신 파견도 내가 볼때 십중팔구 성공하지 못합니다. 아마 귀국도
못하는 최악의 사태를 맞을지도 몰라요. 그렇게 되면 결국 출병을 할
수밖에 없는데, 그건 아주 중대한 문젭니다.

지금 우리 일본이 과연 조선국과 전쟁을 할만한 처지인지 냉정히 생각
해봐야 합니다. 전쟁은 충분한 사전준비가 있어야 가능한 것인데, 지금
우리의 국력은 그렇지가 못합니다. 섣불리 일을 저질렀다가는 낭패를
보기 십상이지요.

나도 정한론을 근본적으로 반대하는 사람은 결코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십년이나 삼십년후에 가능한 일이지, 지금은 그 시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사신의 파견도 반대합니다"

오쿠마가 이렇게 반대의사를 분명히 한 것은 실은 오쿠보와 은밀한
내통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쿠보는 구미사절단을 구성할때 평소 자기와 국정에 관한 의견이 잘
맞을뿐 아니라, 그래서 남다른 친분을 쌓기도한 오쿠마에게 당신은
남아서 정부가 혹시 엉뚱한 일을 저지르지 않도록 잘 좀 조종을 하라고
당부를 했던 것이다.

말하자면 오쿠마는 오쿠보가 해외로 나가면서 태정관의 수뇌부에 잔류
시켜 놓은 자기 사람이었던 것이다.

오쿠마의 그런 주장은 그 한사람만의 절대 소수 의견이어서 간단히
묵살되고, 사신 파견 쪽으로 쉽사리 뜻이 모아졌다.

그러나 누구를 사신으로 보내느냐 하는 문제로 말들이 많았다. 대체로
모두 사이고가 사신으로 가는 것은 반대였다. 만약의 불행한 사태를
생각해서 각료가 아닌 그 바로 아래급의 사람중에서 선발하여 파견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도 있었다.

그 말에 사이고는 화를 냈다. 국가의 중대사를 그런 식으로 처리해서는
안된다면서 기어이 자기가 가겠다고 한바탕 역설을 하고나서 산조를 향해
말했다.

"이제 산조 도노께서 결론을 지어 주세요"

산조는 표정이 바짝 긴장되었다. 그러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조금 웃음이
떠오르는 것 같기도 했다. 그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상대가 대원군이니 아무래도 사이고공이라야 되지 않을까 싶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