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호는 과연 순풍에 돛을 단 것일까. 개혁과 개방의 "두 수레바퀴"는
제대로 굴러가고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는 것이 중론이다.

개방이라는 한쪽 수레바퀴는 잘 굴러가고 있지만 개혁이라는 또다른
수레바퀴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두 바퀴가 균형을 이루며 회전해
주었으면 좋으련만,현실적으로는 "개혁바퀴"가 "개방바퀴"의 속도를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유는 무엇일까. 비효율적이고 적자투성이의 "국영기업"들 때문이라는
것이 지배적인 견해다.

중국을 정부.기업,그리고 일반인민의 세 부류로 나눌때 정부는 개혁을
주창한 쪽이니 그 누구보다 개혁의지가 강하다. 농민을 포함한 일반
인민들도 개혁을 찬성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잃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업은 다르다. 그들은 잃을 것이 많다. 국영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종신고용제.종신간부직.보장된 임금등 이른바 "3철타파"를 두려워
하고 있다.

주중 한국대사관의 현정택국장은 "중국의 고용제도는 기업이 주택 의료
퇴직후의 생계는 물론 심지어 장례비까지 책임지는 체제인 상황에서 철밥
통의 상실을 우려하는 이들이 개혁을 두려워 할것이라는 것은 불문가지"
라고 말했다.

"위에서 정책을 수립하면 아래에서는 이를 피해가기 위한 대책을 수립
한다"는 "상부정책,하부대책"이라는 우스갯 소리도 있다. 사회주의라는
이데올로기 50년이 남겨놓은 오불관언의 태도,나태 무책임 자기방어의
뿌리가 너무 깊게 박혀있는 것이다.

"김치먹고 깍두기 먹던 우리 한국사람 입맛이 쉽게 바뀌지 않는것처럼
사회주의의 잔재를 쉽게 걷어낼수 있다고 믿는 것은 순진한 생각입니다"
백화점건설 타당성 검토를 위해 상해를 방문하고 있다는 김강민
신세계백화점 홍콩사무소장의 말이다.

국영기업의 밥줄을 대고있는 사람들이 개혁을 두려워 한다면 개혁은 사실상
심각한 장애에 부딪쳐 있다고 말할수 있다. 왜냐하면 개혁개방이전의 중국
경제에 있어 국영기업부문은 비농업생산의 거의 전부를 차지하였기 때문이다
개혁개방이후 그 비중은 줄어들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50%정도를 생산해낼
정도로 중국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국영기업의 개혁이야말로 개혁의 핵심이며,경제개혁의 제1과제"라는
인민일보 범경의편집국장의 지적이 문제의 정곡을 갈파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을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자본주의식 회계방식을 받아들이는데 있어서는 농민들이 국영기업들 보다
"한수 위"라는 웃지못할 표현은 엄연한 사실이다.

농사를 지어 시장에 물건을 내다파는 자영농민들은 판매가격과 원가가
분명해 자본주의식 손익이 그대로 드러난다. 영업의 형태가 단순하므로
자본주의식 계산을 쉽게 이해하고 이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는 풀이다.

반면 거대한 규모의 국영기업등은 순수 자본주의식 회계자체가 어려운
실정이다.

"중국에는 원가나 이익이라는 개념조차 확립되어 있지않다"는 이야기는
수없이 들어왔지만 설마하는 의구심은 버리지 않고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사실이라는 것은 곧 확인되는 일이 있었다.

북경연산석유화공공사,상해의 보산강철 동조선소 항공공업집단 폴크스바겐
(자동차),심천의 장성계산기집단공사(컴퓨터)등 10여군데의 대규모 국영기업
들을 돌아보았지만 판매액,원가,이익,세금으로 이어지는 자본주의식 회계
자료를 제대로 정리해 놓고 보여주는 곳은 한군데도 없었다.

내부적으로 정리해놓고 있는 자료는 있겠지만 그내용들이라는 것이 서방
사회가 적용하고있는 개념들과 다른것이 많아 서방의 회계보고서와 직접
비교하기가 어렵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회계가 제대로 안되는 상황에서는
비효율과 적자의 요인이 무엇인지 가려내기 어렵다.

설혹 적자의 요인이 과다한 고용에 있다는 판단이 선다하더라도 이미
고용되어있는 인원의 감축도 쉽지않은 것이 현실이다. 사회주의가
지향하는 사회보장이라는 명제가 그림자처럼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북경에서 서남쪽으로 50km 정도 교외로 나가면 연산석유화공공사가 있다.
공장이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을뿐 아니라 석유화학공장 치고는 제품의
수직계열화도 잘된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고용인원이 1만2천명이나
된다는 소리를 듣고는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같은 규모의 삼성종합화학
이나 현대석유화학은 단 1천명내외의 인원을 고용하고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국영기업의 개혁이 제대로 안되는 이유가 철밥통을 지키려는 국영기업
사람들의 저항 때문만은 아니다.

중국지도부 자체가 변화의 모습을 보이지않는 것이 더 큰 문제라는 주장도
있다. 중국지도부는 국영기업개혁이 "기업의 독립성보장"에 달려있다고
판단하고 있으면서도 사회주의적 "통제의 끈"을 그대로 쥐고있는 것이다.

전문경영인에게 기업을 맡겨 책임지고 운영토록 하겠다는 청부경영책임제,
기업을 경영인에게 임대해주고 계약에 따른 이익분할을 하자는 취지의 임대
경영책임제등도 도입,실시해 왔다.

하지만 각 기업들이 실질적으로 독립채산을 적용할수 있는 여건은 전혀
조성되어 있지않다. 예를들면 공장장(경영자)보다 더많은 권한을 쥐고있는
기업단위 당위원회서기가 아직도 상존하는 관리체계,세무당국과 기업이
마주보고 앉아 "타협과 협상력"에 의해 결정하는 조절세(우리나라의 인정
과세와 유사),대출금상환의 예외적 경비인정등 정부관료가 임의로 결정할
수 있는 통제수단이 많이 남아 있는한 국영기업개혁의 관건이랄수 있는
"기업의 독립성보장"은 요원하다는 지적이다. 경영성과가 표준화된 절차에
의해 공정하게 평가되기 보다는 경영인의 정부관료와의 개인적인 "협상력"
에 좌우된다는 것은 본질적인 개혁이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욱이 정부관료와 기업이 서로 결탁하여 대출금 상환의 경비인정을 과다
하게 계상한다든가,조절세를 과소계상하는등의 편법을 동원하여 지대(rent)
를 따먹으려는 악폐까지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앞으로 나아가야할
개혁바퀴가 거꾸로 가고있는 사례들이라할수 있다.

아직 그 발달수준은 미미하지만 주식제 도입과 증권거래소의 개설은
소유와 경영을 분리시켜 기업의 독립성을 보장해 주기위한 노력으로
간주되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자의성이 강한 이윤상납제도(기업이
벌어들인 이윤을 국가에 상납한다)를 납세로 전환시키려는 이른바
이개세개혁(84~86년)을 발전시켜 투명한 과세가 이루어지도록 하겠다는
계획도 국영기업의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몸부림이라고 볼수있다.

중국은 국영기업법 기업파산법(88년)을 제정한데 이어 92년 국영기업법의
구체적 실행을 위해 "국영기업 경영체제 전환조례"를 공포하여 국영기업에
대한 개혁을 구체화하려는 노력도 경주해왔다. 법적 제도적(조세 금융)
개념적(회계) 개선 노력이외에도 규모의 경제를 살려보자는 취지에서
한국과 일본의 대기업그룹을 본떠 1백개의 대형기업집단을 육성하겠다는
계획도 진행시키고 있다.

이 모든 노력을 종합해보면 중국정부의 국영기업개혁의지가 얼마나
강한가 하는 것은 쉽게 짐작할수 있다.

하지만 문제를 푸는 열쇠는 다른사람이 아닌 중국지도부 스스로가
쥐고있다는데 문제의 모순이 있다. 국영기업의 개혁은 책임경영을
가능케할수 있는 독립성보장에 달려있으나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고집하며
통제의 사슬을 계속 틀어쥐는 자가당착을 시정하지않는한 국영기업의
개혁은 그자체로서 분명한 한계를 지닌다는것이 중국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양봉진 편집위원 현지르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