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쿠보가 사이고를 찾아온 데에는 자기 나름대로 복선이 있었다.

표면적으로는 해외 나들이에서 돌아온 인사차였고, 또 요양중이라 하니
문병차이기도 했다.

그러나 속으로는 사이고의 의중을 직접 한번 확인해 보려는 것이었다.

말할 것도 없이 조선국에 사신으로 가는 문제에 대해서였다.

귀국을 하자 오쿠보는 누구보다도 먼저 자기 사람인 오쿠마를 만나
그동안의 정사에 관하여 자세한 얘기를 들었다.

여러가지 문제가 있었으나 무엇보다 비중이 큰 당면 과제는 조선국과의
관계 악화에 대한 대책이었다.

사이고가 사신으로 가기로 결말이 났다는 얘기를 들은 오쿠보는 대뜸,

"안되지"

한마디로 잘랐다.

"내가 완강히 반대를 했지만, 그러나 반대하는 사람은 나 혼자 뿐이었으니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지 뭐예요"

"어쨌든 안돼요"

오쿠보는 어금니를 질끈 물었다.

이미 집행된 사안이 아니고, 결정만 해놓은 상태이니 어떻게 해서든지
저지를 해야 된다는 의지의 표시였다.

다음은 태정대신을 집으로 찾아갔다.

구미 순방중에 귀국하라는 연락이 있어서 돌아왔으니 인사차 응당 찾아가야
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조선국에의 사신 파견 문제에 대한 산조의 견해를
사석에서 자세히 들어보기 위해서였다.

오쿠보가 찾아오자, 산조는 반기면서 자기는 조선국과의 관계 악화를
전쟁쪽으로 몰아가고 싶지는 않다고 전제하고, 그동안에 있었던 일을 자세히
늘어놓은 다음,

"사절단 전원이 돌아온 뒤에 새로 논의해서 결정이 되거든 다시 상주하라는
천황폐하의 분부가 계셨으니 아직 사이고의 사신 파견 문제는 미정 상태라고
할수 있지요"

하고 결론 비슷하게 말했다.

"아, 그렇습니까. 그런데 이미 일이 다 결정된 것같이 얘기들을 하던데요"

"그건 내가 천황폐하와의 독대에서 있었던 얘기를 상세히 밝히지 않았기
때문이겠죠"

"그럼 사이고공은 어떻게 알고 있나요?"

"아마 자기가 사신으로 결정된 걸로 알 겁니다. 천황폐하께서 대원군을
상대하려면 아무래도 사이고라야 되겠지 하는 말씀을 하셨거든요. 그 말만
내가 사이고에게 밝혔죠. 그렇지 않고 독대의 내용을 사실대로 알려주면
사이고가 어떤 행동을 취할지 알수 없어서 말이외다"

"잘 하셨어요. 그런 중대한 문제는 사절단이 돌아온 다음에 정식으로 논의
하는게 옳지요"

오쿠보는 속으로 그렇다면 됐구나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