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중요한 일이라도 있는듯 비장하게 우리 산악회원들은 수요일 저녁
어둠이 까리면 어김없이 구기터널 입구에 모인다.

북한산을 가기 위해서다.

야간산행을 즐긴지 벌써 2년째, 위험하지 않느냐는 주위사람들의 만류를
무릎쓰고 야간산행을 시작한 이후 이제는 그 위험성에 짜릿함까지 즐기는
경지(?)에 이르게 됐다.

지난 92년 산을 좋아하는 사람 6명이 모여 조직한 "야산회" 일요일 산행만
으로는 운동량이 부족하다며 주중에 한차례 더 야간산행을 하는게
어떻겠느냐고 주고 받은 농담이 실제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던것이 이제는 습관처럼 몸에 배어 밤낮으로 산을 찾게 되었으니 정말
못말리는 사람들이다.

산 앞에 서면 도심의 공해에 찌들어 누렇게 뜬 얼굴들이 금방 20대 젊은이
처럼 생기가 감돈다.

코끝에 감기는 흙냄새와 나무냄새...

누적된 피로가 씻기고 가쁜한 기운이 허파에 고여 올때면 자연스레
풀어지는 기분때문에 꼭 산사람이라도 된듯 마음이 여유로워진다.

손전등 불빛을 밟으며 어둠이 눅진녹진 배어있는 산등성이를 오르다 보면
한 주동안 쌓였던 피로가 사라진다.

어둠속에 쉼없이 걷다보면 세상의 모든 잡념이 사라녀 지금 오르고 있는
서울의 북한산이 소설속에 나오는 깊은 산속으로 착각할 정도다.

이러한 우리들의 밀행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산악회원들과 일상적인 만남
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끈끈한 유대감이 생겨난다.

인적없는 깊은 산속에서 느끼는 기분은 그야말로 상쾌함 그 자체이다.

안개가 촉촉히 내리는 밤이면 더욱 그러하다.

산마루에서 땀을 식히며 술한잔과 함께 주섬주섬 풀어놓는 이야기마당은
또한 빠질수 없는 우리 산악회의 프로그램이다.

야간산행을 마치고 하산할때면 산악회원들은 항상 그랬던 것처럼 예정된
내일로 돌아가기 위해 발걸음을 서두른다.

우리 "야산회"의 회원은 세종연구소의 유석율박사, YS는 못말려를 펴낸
미래사의 김준묵사장, 인텍크의 홍용남사장, 자영업을 하고 있는 정문호씨,
투비탑의 조명진사장, 그리고 필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