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ADVERTISEMENT

    [살며 생각하며] 자리의 의미 .. 노은 <소설가>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얼마전에 두 아이를 데리고 버스를 타는 젊은 엄마를 보았다.

    한 아이는 업고, 또 한 아이는 부둥켜 안고 간신히 버스에 오르는 모습이
    굉장히 힘들어 보여서 순간 내마음이 다 조마조마했다.

    그래서 자리가 많이 비어있는데도 나도 모르게 일어서서 자리를 양보하려고
    했을 정도이다.

    두 아이 모두 어려보였고 젊은 엄마는 워낙 여윈데다 몹시 지친 모습
    이었다.

    무척 힘겨울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마솥 더위라는 이 여름을 혼자 견디기에도 힘겨운데 어린 두 아이까지
    거느렸으니..

    버스는 자리가 거의 비어 있었다.

    그런데도 그 젊은 엄마는 한 아이를 자리에 앉히고 그 옆에 옹색스럽게
    함께 앉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한 자리에 엄마와 두 아이가 함께 앉은 셈이 되었다. 버스는 거의
    텅 비어 있었는데 굳이 한 자리만 차지하고 앉은 그 젊은 엄마의 모습이
    나에게는 퍽 인상적이었다.

    좁은 자리에 함께 앉은 옹색함 못지않은 소박하고 사려 깊은 다정함이 뒤에
    앉은 나에게까지 번져오는 것만 같아서 혼자 조그맣게 웃었다.

    나는 혼자였다.

    그리고 언제라도 아이를 업은 엄마나 나이 든 노인들이 타면 미련없이
    일어설 준비가 되어 있었다.

    버스나 전철을 탔을때 빈 자리가 있더라도 금방 앉지 않고 머뭇거리고,
    앉아 있다가도 누군가 자리가 필요한 사람이 나타나면 망설이지 않고
    일어선다.

    나는 아이가 하나고, 게다가 키가 나보다 훌쩍 큰 중학생이 되어서 일일이
    내 손이 가지 않아도 되므로 이제는 내가 그 아이를 보살핀다기보다 오히려
    믿고 의지하고 싶어질 때가 더 많다.

    듬직하고 흐뭇하지만 대신 아기자기한 재미는 없다.

    가끔은 손을 잡고 다니기도 하지만 함께 다니는 일보다는 각자 행동하는
    때가 더 잦다.

    어쩌다 함께 버스나 전철을 타게 되면 나는 미리 이렇게 말한다.

    "자리가 비면 엄마가 먼저 앉는다. 또 자리가 비어서 네가 앉게 되더라도
    할머니 할아버지나 어린 아이를 데리고 있는 사람에게는 무조건 자리를
    양보한다"

    아이가 조금 어렸을 때만 해도 버스나 전철에서 자리가 비면 아이를 먼저
    앉히곤 했다.

    그러다 보니 아이도 빈 자리에는 당연히 앞뒤 생각없이 제가 앉곤 했다.

    어리니까, 그리고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에 아이를 먼저 앉히는게 버릇이
    되어 있던 어느날 우리 가족은 함께 전철을 탔다가 아주 혼이 난 일이 있다.

    아마 영화를 보고 돌아오던 길이었을 것이다.

    밤이 늦은 시간이어서 전철은 그다지 붐비지 않았다.

    중간쯤에 우리 세 식구는 나란히 자리에 앉게 되었다.

    셋 다 지쳐 있었고 전철이 지상을 달리는 구간이어서 밤이 깊어가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다.

    갑자기 호통 소리가 났다.

    아저씨처럼 보이는 할아버지였는데, 취중인 것같았다.

    늙은이한테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애도 그렇고 부모라는 사람들도 어쩌면 그렇게 생각이 모자라느냐는
    것이었다.

    순간 아이의 아빠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이와 나도 함께 자리에서 일어섰음은 물론이다.

    그순간 깨달은 것은 이제 더이상 우리 아이가 어린애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진정한 사랑이 어떤것인가 하는 생각도 잠깐 했던것 같다.

    무조건 아끼고 보호하는 것만이 사랑이 아니라는 것을 아프게 깨달은
    순간이었다.

    워낙 건장하신 분이라 할아버지가 아니고 아저씨인줄 알았다고 변명처럼
    내가 말했다.

    다음부터는 자리가 비어 있어도 "너는 이제 서있어라. 의젓한 소년이니까"
    하고 아이의 아빠가 웃으며 말했다.

    자리에 앉아 있다가도 양보를 해야할때는 얼른 일어나 양보하라고.

    그날 이후 우리 가족은 함께 전철이나 버스를 탈때는 자리에 대한 약속을
    꼭 지킨다.

    자리가 비었을때 앉는 순서는 아이가 아닌 내가 먼저이다.

    그리고 거침없이 양보한다는 것을 잊지 않는다.

    빈자리가 많이 남아 있는데도 굳이 한자리만을 차지하고 앉은 젊은 엄마의
    모습이 새삼 나에게 자리의 의미를 생각하게 해 주었다.

    자리란 바로 존재의 의미일 것이다.

    자신과 타인을 이어주는 소중한 공간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자리를 양보한다는 것은 옆사람에 대한 작지만 아름다운 관심과
    따뜻한 배려가 아닐는지.

    ADVERTISEMENT

    1. 1

      [한경에세이] K패션의 진짜 경쟁력은 손맛

      필자는 공장이 일상인 환경에서 크고 자랐다. 모터가 돌아가는 소리와 바늘이 원단을 박아내는 리듬이 공장 안을 메웠고, 직원들의 손끝은 원단의 방향과 흐름을 잡아주며 공정을 이어갔다. 그 손맛은 자동화가 확대되던 시기에도 쉽게 대체되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그 소리들은 단순한 기계적 움직임이 아니라 숙련과 집중, 시간을 통해 만들어진 결과였다. 결국 패션 제조에서 기술의 진짜 차이는 그런 손끝에서 나왔다. 그 장면과 소리를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유럽의 고급 시계 산업은 지금도 사람이 만든 흔적을 품질의 증거로 삼는다. 인증된 중고 제품이 더 높은 가격에 거래되기도 하고, 긴 대기 시간조차 브랜드의 진정성을 확인하는 과정으로 받아들여진다. 소비자는 단순한 기능을 사는 것이 아니라 숙련, 완성도, 축적된 시간을 산다.패션도 예외가 아니다.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럭셔리 업체들은 지금도 아틀리에를 운영하며 특정 공정을 기계에 넘기지 않는다. 한 명의 제작자가 제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지는 방식, 완성도를 기준으로 가격이 형성되는 구조, 그리고 공정을 지나치게 단순화하지 않으려는 태도가 브랜드 정체성을 지탱한다. 그들의 경쟁력은 손기술을 갖춘 인력에서 비롯된다.최근 한국패션협회의 조사에서도 이러한 흐름이 확인된다. 국내 제조 인력 상당수는 30년 이상의 경력을 보유한 시니어로, 그들의 감각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축적된 데이터에 가깝다.반면 기술은 제조 공정을 더 단순하고 다루기 쉽게 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지금 제조업 현장에 도입되는 인공지능(AI)은 단순한 보조 도구가 아니라 실행 주체인 ‘에이전트’ 역할

    2. 2

      [윤성민 칼럼] 아틀라스 시대, 현대차 노조의 운명은

      미국 보스턴 시민들의 어깨는 미국인 평균에 비해 한 치쯤 올라가 있다는 말이 있다. 미국의 정신이 태동한 곳이자 세계 최고 명문 하버드대와 MIT도 모두 광역 보스턴권에 있다. 현대자동차의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 개발 주역 보스턴다이내믹스는 1992년 MIT의 학내 벤처로 탄생했다. 로봇 공학의 대부로 불리는 마크 레이버트(현 보스턴다이내믹스 AI연구소장)가 창립자다.보스턴다이내믹스는 혁신 군사기술연구의 상징인 미국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과 군사 로봇 프로젝트로 기술력을 키워 오다가 2013년 세계 최고의 플랫폼 기업 구글에 인수됐다. 당시 인수를 주도한 사람이 ‘안드로이드의 아버지’ 앤디 루빈이다. 그러나 루빈이 불미스러운 일로 갑자기 구글을 떠나게 되면서 또 한 번 손바뀜이 일어나게 된다. 이번엔 세계 최대 기술 투자 펀드 비전펀드를 운영하는 손 마사요시(孫正義)의 소프트뱅크다(2017년). 그때 인수전 경쟁자들이 세계 1위 자동차 기업 도요타와 세계 최대 온라인 쇼핑몰·물류 기업 아마존이다. 소프트뱅크가 2020년 위워크 등의 투자 실패로 20년 만에 적자를 기록하면서 다시 매물로 나오자 이를 차지한 게 현대차다.보스턴다이내믹스 역사에 얽힌 대학과 정부 연구기관, 기업들은 한결같이 글로벌 넘버 원이다. 이 시대 최고의 지력·기술력, 자본력이 어디로 수렴되고 있는지 단번에 읽을 수 있다. 현 주인 현대차는 세계적 자동차 기업이긴 하지만 1위는 아니다. 그러나 이번 CES에서 입증됐듯 세계 최고 모빌리티 기업 자리를 선점할 수 있는 결정적 계기를 맞게 됐다.현대차가 구글, 소프트뱅크에 비해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데이터를 쌓아 가면서 로봇에 현

    3. 3

      [데스크 칼럼] 韓 소비자가 성공시킨 쿠팡

      쿠팡 사태가 꼬일 대로 꼬였다. 최근 서울 잠실 쿠팡 본사에서 벌어지는 10여 개 정부 부처의 동시다발적 전방위 조사는 이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정보 유출 사고 주무 기관뿐만 아니라 국세청, 공정거래위원회 등 10개 이상 정부 부처가 쿠팡 본사에서 조사를 벌이고 있다. 수백 명의 조사 인력이 한꺼번에 몰려 ‘미니 세종시’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미니 세종시' 된 쿠팡 본사이번 사태는 통상 마찰로 비화할 조짐마저 보인다. 쿠팡의 주요 주주인 미국 벤처캐피털(VC)들이 한국 정부의 과도한 표적 수사에 반발해 투자자-국가 분쟁해결(ISDS) 중재 의향서를 제출했다. 미국무역대표부(USTR)에도 조사를 요청했다. 이들은 지난달 김민석 국무총리의 발언을 적대적 규제의 근거로 삼았다. 김 총리는 “마피아를 소탕할 때와 같은 각오로 시장 질서를 잡아야 한다”고 했다.정부의 지나친 강경 대응도 문제지만 사태가 여기까지 온 데는 쿠팡의 책임도 작지 않다. 청문회 당시 증인들의 불성실한 답변 태도와 ‘셀프 조사’ 의혹 등은 여론의 질타와 국민적 공분을 샀다. 탄탄한 ‘경제적 해자’를 구축한 쿠팡이 독보적인 지위에 취해 안이하게 대처했다는 지적이 많다. 이쯤 되니 애초 개인정보 유출이란 사건은 온데간데없고, 요란한 갈등과 상처만 남았다.쿠팡은 두말할 필요 없는 혁신 기업이다. 쿠팡의 로켓배송은 산업 지형도와 생태계뿐 아니라 소비자의 삶의 방식을 바꿔놨다. “쿠팡의 행태가 얄밉지만 탈팡은 어렵다”는 소비자들 반응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쯤에서 묻고 싶은 게 있다. 쿠팡의 혁신은 어떻게 이뤄졌을까.기업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