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모롱 고지에 별안간 검은 연기가 피어 오르는가 하니 시꺼먼 물체가
씩씩거리며 산허리를 꺾어 돈다. 기차다. 가로놓인 신작로 한복판의
레일을 타고 기차는 정거장을 바라보았다. 뀌익 소리를 냅다 지르며
숨이 찼다"

계용묵의 소설 "바람은 그냥 불고"에 나오는 증기기관차 소묘다. 연기의
궤적도 그리지 않고 기적이나 칙칙폭폭 소리도 내지 않는 고속의
디젤기관차와는 달리 생명력을 느끼게 하는 낭만이 깃들여 있었다.

영국의 스티븐슨이 1814년의 시작품을 거쳐 25년에 만든 세계최초의
증기기관차인 로코모션호가 스톡턴~달링턴 구간의 철길을 시속 16km,
발걸음보다 4배 빠른 속도로 달린뒤 성능이 날로 향상되기는 했으나
운행도중에 갖가지 진풍경이 벌어졌다.

가파른 경사의 철길에서는 승객들이 열차를 떠밀어 올려야 했는가하면
도중에 추진연료가 바닥이 나는 경우에는 승객들이 물과 땔나무를 구해
와야 했다. 또 영국에서는 야생버섯이 널려있는 벌판을 지나던 열차가
그곳에 승객을 내려놓고 버섯을 따게했던 일까지 있었다.

목적지에 도착할 시간을 예측할수 없었던 당시의 신문들에 보도된
열차시간표에는 발차시각만이 나와 있을 뿐이다. 빡빡한 시간표에 얽매여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눈에는 너무나 낭만적인 증기기관차여행의 정경으로
비쳐질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는 성능이 초기보다 훨씬 향상된 1889년에 철도의 역사가 시작
되긴 했지만 일제강점기 해방 6.25를 거치면서 수많은 애환이 깃든
증기기관차였다.

증기기관차는 1956년 미국의 원조로 디젤기관차가 도입되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밀려나 67년8월31일 남원~서울간 여객열차운행을 마지막으로
퇴역했다.

그뒤에도 증기기관차는 산간지역의 산업용으로 83년까지 운행되었고 또
81년에는 동해남부선(부산~경주)에 관광용 열차로 그 명맥이 되살려지게
되었으나 기관차의 노후화로 84년에 운행이 끊기고 말았다.

철도박물관이나 어린이대공원에서나 그 모습을 찾아볼수 있는 유물이
되어버렸다.

기억에서조차 까마득히 사라진 증기기관차가 어제부터 서울교외선(서울~
송추~의정부)에 주말레저열차로 다시 등장했다. 10년만에 산야에 울려퍼진
뀌익소리, 칙칙폭폭소리를 들으면서 한때나마 추억을 되살리고 향수를
달래보는 삶의 안식처가 될 것으로 기대를 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