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의 충신이자 대학자였던 길재는 효행으로도 후세에 모범을 남긴
인물이다. 고려가 망하자 고향으로 돌아와 학문에 전념했던 그는
노모가 쓰는 방 청소며 이부자리 간수를 몸소했다.

저녁이면 노모의 잠자리를 보살폈고 새벽에도 빼놓지 않고 다시 들러
편히 주무시는지를 확인했다.

그의 아들들이 대신하겠다고 하면 "어머님께서 늙으셨으니 훗날 어머님을
위해 이런 일을 하고 싶어도 그때는 할수 없게 될것"이라고 뿌리치고
손수 노모를 보살폈다.

조선조 인조때 학자 박지계는 나이들어서도 효성이 남달라 어머니가
여러해 병석에 누워있었지만 한시도 곁을 떠나지 않았다. 밤에 잠이
오면 앉은채 목침으로 이마를 괴곤 해서 끝내는 눈썹이 모두 빠져
버렸다고 한다.

술을 마시고 운전하려는 아들을 말리다가 오히려 아들에게 뭇매를 맞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맞고 어떻게 살겠느냐"고 목매어 죽는 요즘 세상에
사는 젊은 이들에게 이런 효행은 아마 먼 꿈속의 이야기처럼 들릴지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선조들에게 효는 인간이 갖추어야 할 기본적 덕목이었다.
나를 낳아 주고 길러 준 부모를 잘 받들고 극진히 섬겨야 된다는 것은
어떤 가치기준으로도 다룰수 없는 인간세상의 근원적 원리로 인식되어
상식처럼 여겨왔다. 따라서 효행을 저버리면 이웃의 지탄과 국가의 엄한
형벌까지 받았다.

그러나 사회가 근대화하는 과정에서 전통윤리의 형식성 보수성 봉건성이
신랄한 비판의 대상이 되면서 효의 부정적 측면만이 강조되고 서구의
윤리만이 최상의 것으로 받아들여져 우리 사회가 또다른 모순과 갈등
속에 빠져 허둥대고 있다는 것이 학자들의 분석이다.

대검통계를 보면 지난해 부모등 존속을 살해 하거나 폭행을 가한 가족
범죄는 1,496건으로 5년전인 88년의 1,059건에 비해 41%나 늘었다.

그중 존속 살해는 43건에 이르고 있다. 또 자식들로부터 버림받아 10년
간이나 폐차에서 연명해온 80년대 노인부부의 동반자살소식은 우리
사회의 비인간화의 심각성을 짐작할수 있게 한다.

싱가포르국회가 부모의 부양을 거부하는 자식들을 벌금형 징역형으로
처벌할수 있게한 "부모부양법"제정안을 심의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져
화제가 되고있다. "효도법"을 만들고 있는 셈이다.

타율적인 효행의 강요가 얼마나 실효를 거둘지는 의문이지만 불효를
규제하겠다는 의지에는 수긍이 갈밖에 없다. 봉황재가 독수리같지 않은
것을 두려워해 자기 깃을 뽑아 버린 어린석음을 탓하고 있을수 만은
없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