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문건에는 이러이러한 연유로 해서 사이고를 전권대사로 조선국에 파견
하기로 지난 10월15일의 묘의에서 결의가 되었으니, 재가를 바란다는 그런
내용이 적혀 있었다.

메이지 천황이 그 문건을 받아 펼쳐서 천천히 목독을 마치자, 이와쿠라는
입을 열었다.

"소신은 묘의의 결의와는 상반되는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잠시 소신의
생각을 말씀 드릴까 하오니, 윤허해 주시옵소서"

"어서 말씀해 보오"

메이지 천황의 말씨와 표정이 함께 부드러웠다.

이와쿠라는 대뜸 속으로 요시이가 잘 작용을 한 모양이구나 싶었다.

그러나 그럴수록 더욱 진지하고 심각해야 된다는 듯이 일부러 한결 긴장된
어조로 정한론의 부당성을 조리정연하게 늘어놓기 시작했다.

2년 가까이 구미 선진국을 시찰해 보니 너무나 배울 점이 많았고, 또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면서 지금 일본으로서는
선진국을 뒤따라 잡는 일에 전력을 기울여야지, 절대로 조선국과의 전쟁
따위 무모한 일을 벌여서는 안된다고, 자칫하면 오히려 일본이 존망의
위기에 처할지도 모른다고 역설하고 나서,

"폐하, 사이고를 전권대사로 조선국에 파견하는 일은 곧 전쟁의 길로 발을
들여놓는 것과 다름이 없으니, 아무쪼록 그 묘의의 결의를 재가하지 말아
주시기 바라옵니다. 그래야 국가가 위기를 모면하게 되고, 또 구미 선진국을
돌아보고 온 저희들이 우리 일본을 한번 그들못지않은 멋진 나라로 만들
기회를 갖게 해주시는 일이 되옵니다. 아무쪼록 잘 헤아리셔서 올바른
성단을 내려주시옵소서"

깊이 머리를 숙여 간청하였다.

"잘 알았소. 나도 심사숙고를 해보고 며칠 안으로 단안을 내리겠소"

메이지 천황은 어느덧 즉위를 한지 6년째가 되는 터이라, 나이는 비록
스물한살이었지만, 제법 관록이 몸에 붙어서 당장 그 자리에서 이와쿠라의
간청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렇게 대답했다.

며칠뒤 천황의 칙서가 하달되었다.

조선국에의 특사 파견건은 일단 중지토록 한다는 것이었다.

그냥 "중지"가 아니라, "일단"이라는 말을 그 위에 붙였다.

정한파 쪽을 염두에 둔 표현이었던 것이다.

뜻밖에 "일단 중지"라는 메이지 천황의 단안이 내리자, 사이고는 노발대발
하였다.

설마 천황이 그런 결정을 내릴줄이야.

허를 찔려도 전혀 예상도 못한 데를 찔린것 같아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게 다 오쿠보의 수작임에 틀림없다 싶으며 냅다 내뱉었다.

"그놈 이제 보니 정말 죽일 놈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