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경제관료] (39) 제4편 빛과 그늘 (4)..창조적 소수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상공자원부의 A씨(41)는 4년전 자신이 내린 "선택"을 아직도 "잘 한
일"로 여긴다. 서울시내 유명대학에서 왔던 "부교수" 오퍼를 뿌리치고
"경제관료라는 명예를 지키기로 한" 결정 말이다.
그는 사무관시절 현지사람들도 쉽게 졸업하기 힘들다는 파리1대학
(소르본대학)에서 프랑스 국가장학생으로 경제학박사학위를 딴 "수재"다.
그가 쓴 정가 1만5천원짜리 "다국적기업 경제학"이라는 저서는 해당
분야의 내로라 하는 교수들이 쓴 책들을 제치고 "스테디 셀러"로
자리잡고 있다.
대학교수라는 "자리"에 미련이 없을 리 없었다. 그런 유혹을 떨치고
과천에 남기로 한 게 단지 "공무원 신분으로 공부를 했는데."라는
부채감이나 의리때문만은 아니었을 게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관료처럼 "일"에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직업도
많지 않다. 교수는 상아탑이라는 틀이, 일반 기업인은 해당기업이
자신의 활동반경을 속박하지만 관료는 그렇지가 않다. 나라전체를
대상으로 일을 하는 직업이다. 얼마나 보람이 있는 자린가"라고.
그러나 A씨가 당시 "상아탑보다는 과천"을 택하기로 했던 데는 "진짜
이유"가 있었다고 한다. 당시 사무관으로 있던 그에게 대학에서의
"스카웃 손길"이 뻗치고 있을 즈음 과장 승진발령이 났기 때문이다.
"난생 처음" 승진의 기쁨을 맛본 그는 "대학교수고 뭐고간에" "과장"이란
타이틀이 좋았던 것이다. "교수직"과 맞바꾼 자리-.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이게 중앙부처, 그것도 "한국경제의 등대"로 불리는 경제부처의
과장직이다.
"과장"이라고 해서 일반기업의 "과장"과 비교할 수는 물론 없다. 평균
잡아 사무관생활 14년은 거쳐야 올라설 수 있는 자리다.
기업과 수평비교하면 어림잡아 이사급은 돼있을 연륜이다. 나이로 쳐도
불혹이라는 40줄에 이르러있는 "인생의 중년"이다. 하는 일로 쳐도
"관료사회의 중심"과 같은 존재다.
예컨대 요즘 재계의 큰 관심사중 하나인 삼성그룹의 승용차사업 진출
여부를 갖고 설명해 보자.
신규사업진출의 열쇠인 외국기술도입 신고서를 수리할 것인가, 아니면
휴지통속에 집어넣을 것인지가 상공자원부 수송기계과장의 "전결사항"
으로 돼 있다.
재무부로 말하면 어지간한 금융기관 신설허용 여부에 대한 전결권이
과장들의 손에 쥐어져있다.
민감한 사안의 경우 장.차관이나 그 이상선의 "입김"이 작용해서 그렇지
"원론"으로 따지면 막강한 파워를 자랑하는 직군이 중앙경제부처의 과장,
서기관들이란 얘기다.
중앙부처에서는 "일개 과장"이지만 일선 집행청으로 들어가면 얘기는 또
달라진다.
국세청의 경우 지방세무서장이 서기관급이다. 시.군의 시장이나 군수.
경찰서장.교육청장과 더불어 "4대 유지"에 들어가는 자리다. "명"에서는
중앙부처의 과장보다 못할지 몰라도 "끗발"에서는 비교할 바가 못된다.
비서가 딸린 널찍한 집무실에 전용 운전기사가 있고, 관내 기업들을
"설설 기게" 만드는 자리다.
재무부의 N서기관은 이런 점에서 보면 "벼락 출세"를 한 인물로 꼽힌다.
고시등용된지 14년만인 지난2월 서기관, 그것도 과장보직을 갖지 못한
"앉은뱅이 서기관"으로 갓 승진했던 그가 한달여전 충남 장항세무서장
으로 전출됐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중앙부처 과장이 얼마나 "대단한" 직급인지 알 만하다. A씨가
"4년전의 선택"을 잘한 일로 여기는 것은 이런 "위세"가 자랑스러워서만은
아닐게다.
사실 "실속"으로 따지면 그 반대라고 하는게 더 정확하다. 위세는 커녕
수당한푼 없이 "야근은 필수고 일요일근무는 선택"인게 중앙경제부처
과장들의 현실이다.
그렇다고 일을 통해 "빛"을 보기도 가장 힘든 직군이다. 잘해야 본전이고
상관이나 매스컴에 깨지지만 않아도 다행이다.
그래서 그들은 때로 초라한 존재라고 스스로를 자학한다. 사무관들이야
"젊은 패기"로 일하고, 국장급 이상되면 "무게"로 일의 맛을 찾을 수
있다지만 과장들은 "이도 저도" 아닌 계층인게 사실이다.
봉급으로 따져도 대졸초봉을 웃도는 초임사무관이나, 언제 그만둬도
연금혜택이 기다리는 국장들의 사이에 낀 "전형적인 박봉존"에 위치해
있다.
그러고보면 A씨의 "후회하지 않으리"는 자신의 선택에 대한 오기 때문
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도 공무원사회를 열병처럼 훑고 지나갔던
"복지부동 신드롬"속에서 과천을 뛰쳐나간 동료들의 모습을 보고는
깊은 회한에 빠지기도 했다.
비단 A씨뿐만이 아니라 "교수급 과장"으로 자위하며 자신에게 주어지는
조직의 명령을 묵묵히 챙기는게 우리 경제부처의 대다수 서기관들일게다.
토인비가 역사발전의 원동력으로 갈파한 "창조적 소수(Creative
Minority)"의 모습을 경제부처 과장들에게서 찾는다면 지나친 감상적
비약일까.
일"로 여긴다. 서울시내 유명대학에서 왔던 "부교수" 오퍼를 뿌리치고
"경제관료라는 명예를 지키기로 한" 결정 말이다.
그는 사무관시절 현지사람들도 쉽게 졸업하기 힘들다는 파리1대학
(소르본대학)에서 프랑스 국가장학생으로 경제학박사학위를 딴 "수재"다.
그가 쓴 정가 1만5천원짜리 "다국적기업 경제학"이라는 저서는 해당
분야의 내로라 하는 교수들이 쓴 책들을 제치고 "스테디 셀러"로
자리잡고 있다.
대학교수라는 "자리"에 미련이 없을 리 없었다. 그런 유혹을 떨치고
과천에 남기로 한 게 단지 "공무원 신분으로 공부를 했는데."라는
부채감이나 의리때문만은 아니었을 게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관료처럼 "일"에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직업도
많지 않다. 교수는 상아탑이라는 틀이, 일반 기업인은 해당기업이
자신의 활동반경을 속박하지만 관료는 그렇지가 않다. 나라전체를
대상으로 일을 하는 직업이다. 얼마나 보람이 있는 자린가"라고.
그러나 A씨가 당시 "상아탑보다는 과천"을 택하기로 했던 데는 "진짜
이유"가 있었다고 한다. 당시 사무관으로 있던 그에게 대학에서의
"스카웃 손길"이 뻗치고 있을 즈음 과장 승진발령이 났기 때문이다.
"난생 처음" 승진의 기쁨을 맛본 그는 "대학교수고 뭐고간에" "과장"이란
타이틀이 좋았던 것이다. "교수직"과 맞바꾼 자리-.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이게 중앙부처, 그것도 "한국경제의 등대"로 불리는 경제부처의
과장직이다.
"과장"이라고 해서 일반기업의 "과장"과 비교할 수는 물론 없다. 평균
잡아 사무관생활 14년은 거쳐야 올라설 수 있는 자리다.
기업과 수평비교하면 어림잡아 이사급은 돼있을 연륜이다. 나이로 쳐도
불혹이라는 40줄에 이르러있는 "인생의 중년"이다. 하는 일로 쳐도
"관료사회의 중심"과 같은 존재다.
예컨대 요즘 재계의 큰 관심사중 하나인 삼성그룹의 승용차사업 진출
여부를 갖고 설명해 보자.
신규사업진출의 열쇠인 외국기술도입 신고서를 수리할 것인가, 아니면
휴지통속에 집어넣을 것인지가 상공자원부 수송기계과장의 "전결사항"
으로 돼 있다.
재무부로 말하면 어지간한 금융기관 신설허용 여부에 대한 전결권이
과장들의 손에 쥐어져있다.
민감한 사안의 경우 장.차관이나 그 이상선의 "입김"이 작용해서 그렇지
"원론"으로 따지면 막강한 파워를 자랑하는 직군이 중앙경제부처의 과장,
서기관들이란 얘기다.
중앙부처에서는 "일개 과장"이지만 일선 집행청으로 들어가면 얘기는 또
달라진다.
국세청의 경우 지방세무서장이 서기관급이다. 시.군의 시장이나 군수.
경찰서장.교육청장과 더불어 "4대 유지"에 들어가는 자리다. "명"에서는
중앙부처의 과장보다 못할지 몰라도 "끗발"에서는 비교할 바가 못된다.
비서가 딸린 널찍한 집무실에 전용 운전기사가 있고, 관내 기업들을
"설설 기게" 만드는 자리다.
재무부의 N서기관은 이런 점에서 보면 "벼락 출세"를 한 인물로 꼽힌다.
고시등용된지 14년만인 지난2월 서기관, 그것도 과장보직을 갖지 못한
"앉은뱅이 서기관"으로 갓 승진했던 그가 한달여전 충남 장항세무서장
으로 전출됐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중앙부처 과장이 얼마나 "대단한" 직급인지 알 만하다. A씨가
"4년전의 선택"을 잘한 일로 여기는 것은 이런 "위세"가 자랑스러워서만은
아닐게다.
사실 "실속"으로 따지면 그 반대라고 하는게 더 정확하다. 위세는 커녕
수당한푼 없이 "야근은 필수고 일요일근무는 선택"인게 중앙경제부처
과장들의 현실이다.
그렇다고 일을 통해 "빛"을 보기도 가장 힘든 직군이다. 잘해야 본전이고
상관이나 매스컴에 깨지지만 않아도 다행이다.
그래서 그들은 때로 초라한 존재라고 스스로를 자학한다. 사무관들이야
"젊은 패기"로 일하고, 국장급 이상되면 "무게"로 일의 맛을 찾을 수
있다지만 과장들은 "이도 저도" 아닌 계층인게 사실이다.
봉급으로 따져도 대졸초봉을 웃도는 초임사무관이나, 언제 그만둬도
연금혜택이 기다리는 국장들의 사이에 낀 "전형적인 박봉존"에 위치해
있다.
그러고보면 A씨의 "후회하지 않으리"는 자신의 선택에 대한 오기 때문
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도 공무원사회를 열병처럼 훑고 지나갔던
"복지부동 신드롬"속에서 과천을 뛰쳐나간 동료들의 모습을 보고는
깊은 회한에 빠지기도 했다.
비단 A씨뿐만이 아니라 "교수급 과장"으로 자위하며 자신에게 주어지는
조직의 명령을 묵묵히 챙기는게 우리 경제부처의 대다수 서기관들일게다.
토인비가 역사발전의 원동력으로 갈파한 "창조적 소수(Creative
Minority)"의 모습을 경제부처 과장들에게서 찾는다면 지나친 감상적
비약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