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다루는 솜씨는 유럽이 미국보다 한수 위다.

미국은 대일무역적자 축소를 위해 미키 캔터무역대표를 내세워 시종일관
협박에 가까운 강경책을 펴왔지만 결과는 오히려 적자확대라는 악순환
이었다.

반면 미키 캔터식의 공격적인 협상 전략을 조심스럽게 주시해온 유럽은
부드러우면서도 끈질긴 인내 의 전술을 구사,올상반기중 대일무역적자를
20. 7%나 축소시키는 개가를 올렸다.

물론 일본과 유럽의 관계는 아직도 불편한 관계에 있는게 사실이다.
유럽의 입장에서 볼때 일본의 무역장벽 완화 노력은 여전히 미적지근할
뿐이고 규제완화를 위한 조치 역시 그저 답답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연합(EU)관리들은 고질적인 대일무역적자가 최근
들어 축소되고 있다는데 대해 매우 고무돼 있다. 수년간에 걸친 지루한
기다림이 드디어 결실을 맺고 있다는 생각에서다.

유럽의 대일적자는 지난해에도 92년(3백12억달러)에 비해 49억달러가
줄어든 2백63억달러를 기록했었다.

그러나 EU관리들은 93년 실적에 대해서는 그다지 의미를 두지 않았다.
이는 주로 일본의 수출감소에 따른 반사적이익에 불과하다는 분석에서
였다.

그러나 올상반기 실적은 의미가 달랐다. 이기간중 대일무역적자가 전년
동기대비 20.7% 감소한 1백17억달러선으로 줄어든 것은 유럽의 수출
증가라는 긍정적 요인이 작용했다는 것이 EU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올상반기중 유럽 수출업자들은 일본시장에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8%
증가한 1백57억달러어치의 상품을 팔았다. 반면 일본의 EU에 대한 수출은
전년동기대비 7%가 감소한 2백74억달러에 그쳤다.

더욱 고무적인 것은 지금까지와는 달리 일본인들이 전통적 수입 품목인
사치성 고급소비재뿐만 아니라 자동차며 수송장비 가구 섬유 맥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품목을 속속 사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유럽위원회 일본담당 책임자인 존 리처드슨은 "우리는 처음부터 미국식의
강압적인 협상전략을 구사하지는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해왔다.

우리는 일본 통상 당국자에 대해 부드러우면서도 끈질긴 압력을 행사
해왔다. 물론 이것은 시장개방압력이라는 점에서는 똑같다. 하지만
미국과는 방식이 다르다"고 강조한다.

미국의 통상관리들과는 달리 리처드슨은 일본시장 개방을 위해 수치
목표를 설정하거나 시장을 개방하지 않으면 제재를 가하겠다는 식의
강압적인 전략을구사하지 않았다. 그와는 반대로 리처드슨을 비롯한
유럽 통상관리들은 인내와끈기라는 한수 위의 협상전략을 선택했다.

EU통상관리들은 무리한 개방압력보다는 우선 32개 수출품목을 선정,
EU상품이 왜 일본시장에서 환영을 받고 있지 못하고 있는지에 대해
일본측과 공동으로 정밀조사에 나섰다.

여기에 대한 최종 보고서는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이러한 작업은 유럽과
일본간의 무역관계를 규명하는데 매우 유용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
리처드슨의 설명이다.

실례로 EU는 이번 조사과정을 통해 유럽 수출업자들이 일본에서의 새로운
교역확대기회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밝혀내고 일본시장
진출을 노리고 있는 유럽기업들을 위해 대대적인 수출촉진정책을 전개하고
있다.

브뤼셀 당국은 또 유럽과 일본 제조업체간의 보다 긴밀한 산업협력관계
구축등을통해 한발짝씩 조심스럽게 일본의 빗장을 열어가고 있다.

일본 정부당국으로 하여금 양측의 의료및 기타 장비에 대한 표준을
상호 인정하도록 하는 끈기있는 설득작업도 펴고 있다.

EU관리들은 또 일본기업들이 정부당국의 무언의 압력으로 유럽제품에
대해 차별대우를 하고 있다는 점을 실례를 들어가며 진지하게 논박하고
있다.

예를들어 전일본항공이 에어버스사와의 계약을 파기하고 미보잉사의
항공기를 구매키로 한점이랄지 영국의 롤스로이스사가 일본시장에서는
제트엔진을 팔아본적이없다는 점등을 들추어 가며 이에 대한 시정을
요구하고 있다.

물론 미국식의 협박조가 아니라 이러한 차별대우가 중지되어야 한다는
점을 부드러우면서도 끈기있게 설득해 나가고 있다. 미국식으로 설쳐봤자
득될게 없다는 생각에서다.

<김병철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