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구요? 나 참 기가 막혀서. 그래, 좋소. 당신들 마음대로 실컷 한번
나라를 위해보오. 더러워서 난 손을 떼겠소. 그만두겠다 그거요"

사이고는 내뱉고나서 그 유난히 큰 두눈을 부릅뜨고 이와쿠라를 노려
보다가,

"권력에 눈이 멀어 쓸개고 뭐고 다 떼내버리고, 국가를 욕되게 하는 비굴한
것들 같으니. 어디 얼마나 잘해 처먹는지 두고 보자구"

욕설을 퍼붓고는,

"에잇!"

냅다 그만 발길로 탁자를 걷어찼다.

그리고 식식거리며 유유히 돌아서 나가버렸다.

그날밤 사이고의 집으로 심복 부하들이 모여들었다.

정한파가 반대파와의 정쟁에서 패하여 사이고가 모든 관직을 그만두고
태정관에서 물러났다는 소식에 접했던 것이다.

모두 비분강개하여 당장 무슨 일을 일으킬 것 같은 기세였다.

심복들 중에서도 사이고의 오른팔이라고 할수 있는 기리노 도시아키가
열기를 띤 목소리로 말했다.

"사이고 도노, 명령만 내려주십시오. 그러면 당장 내일 새벽에라도 행동을
개시하겠습니다"

그는 육군 소장으로, 사이고 밑에서 근위병을 지휘하고 있었다.

그래서 근위도독인 사이고의 명령만 떨어지면 근위병을 이끌고 태정관을
점령할 뿐 아니라, 반대파 즉 이와쿠라와 오쿠보를 비롯한 중신들을 모조리
체포할 작정인 것이었다.

"안되오. 일은 이미 끝났소"

사이고는 담담한 어조로 대답했다.

그는 실제로 이제 다 끝이 났으니, 조용히 물러나 주리라 마음먹은 터였다.

"끝나다니요, 안 끝났습니다. 묘의의 결의를 그들이 농간을 부려
뒤집었듯이 다시 우리가 힘으로 뒤집어 엎어야 합니다"

"안된다니까 그러오. 그들이 묘의의 결의를 뒤집은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지만, 그러나 천황폐하를 움직여서 그렇게 했으니 도리가 없소. 이미
칙서가 내려진 마당에 힘으로 뒤집어 엎으려는 것은 천황폐하께 정면으로
도전하는 일이니 절대로 안되오"

"그러나 칙서를 일단 중지로 내리셨다니까, 천황폐하께서도 전적으로 반대
하시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 일단이라는 말을 잘 되새겨야 합니다.
힘으로 태정관을 장악한 다음 사이고 도노께서 다시 상주를 하면 그때는
천황폐하께서도 틀림없이 재가를 내리실 겁니다. 그리고 사이고 도노,
오쿠보가 괘씸해서도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지 않습니까? 이번 일이 다
그자의 수작 아닙니까"